Dilettante Zen
[도서/리뷰]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 사필귀정 인과응보 본문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에 가족, 특히 배우자와의 갈등을 다룬 스릴러물을 연달아 읽고 있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부터 시작해서 진 한프 코렐리츠의 <진작 알았어야 할 일>, 그리고 리언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 사실 <나를 찾아줘>를 필두로 이런 부류의 책들이 <나를 찾아줘>를 잇는 수작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국내에 소개된 탓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서구권에선 이런 '내 배우자의 은밀한 비밀과 배반'에 유난히 더 열광한단 말인가? 어찌보면 새로운 트렌디 소재인가? 예측해보건데, 살인마-형사 구도의 스릴러물은 식상하니까 의외의 인물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경악할 만한 일들을 벌여보자 이런 접근 아니었을까? 침대를 공유하는 사람이 스릴러물의 등장인물 같은 면모를 드러내고 내 가정에 불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면? 그거 꽤 구미 당기는 소재로군.
사실 트랜디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영화, 드라마 많은 부분에서 부부의 스릴러는 많이 다루어져왔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영화 <Mr. & Mrs. Smith> 등등, 내가 몰라서 그렇지 아무튼 예전부터 많았다.
<허즈번드 시크릿>에선 스릴러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반전이나 명쾌한 추리 요소들을 보기가 어렵다. 잔잔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등장인물들이 오랜 결혼 생활을 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맞이하게 되는 일들과 거기서 느껴지는 실망, 분노, 욕지기, 권태 등등을 묘사하는 부분이 오히려 인상깊다. 오, 소설 읽는 결혼한 아내들의 속을 쿡쿡 찔러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켜 내는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 남편이 나의 사촌과 바람이 난 여자, 남편이 친딸들에게 야릇한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아 걱정되는 여자, 십몇년 전 딸을 살해 당한 여자 등등. 이런 불쾌한 요소들에 대처하는 아내들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 묘사는 꽤나 흥미롭다.
단지, 분량은 상당히 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게다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허즈번드와 그의 시크릿은 의외로 소설 중간에서 바로 밝혀져 버린다. 응? 그럼 남은 분량에서 대체 뭘 다루려고?
뭘 다루냐면 아주 뻔한 우리네 인생의 가르침이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죄를 지었으면 어떻게든 인생에서 벌을 받지 않겠는가 하는 자조적 해석을 하게 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재미있는 건 '에필로그' 때문이다. 그런 식상한 인과응보 가르침만 준다면 이 책이 뭐가 즐거웠겠는가.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인간의 인생과 운명을 서술하는 방식이 꽤나 흥미롭다. 우리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린 알 수 없지만, 또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 아니었다면 인생은 또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는 점을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재미있다. 게다가 그 개념을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품고 있는 죄책감, 회의감, 애착 같은 것들이 오해와 착각 때문에 고착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서술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그러니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이 책은 그럭저럭 하다못해 지루한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긴장감 유발하는 소재들 때문에 꽤 무거운 마음이 되어가며 책을 읽었다만, 끝에 남는 것은 의외로 홀가분한 기분이다. 인생사 고민하면 뭐하니, 역시 감정 보다는 이성과 정보이지, 하는 매우 개인적인 고찰을 해보게 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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