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도서/리뷰] #456 그와함께 떠나버려 본문
소방관 로미오는 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여 절망적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런 그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성심성의껏 간호해주는 간호사 줄리엣이다.
로미오는 자식 같이 돌봐 온 십대 동생 바네사의 임신 중절 수술까지 도와준 줄리엣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로미오는 곧 재활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게 되고 둘은 편지로 연락하게 된다.
이 무렵 줄리엣의 인생은 암울하다. 세상 비열하고 사악하기 그지 없는 남편에게 인격 모독 당하고 살면서도 시험관 아기를 가지려고 절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련할 정도로 그에게 꼼짝 못하다가 결국은 어렵게 가진 아이 조차도 자연 유산하고 줄리엣은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 계속 줄리엣과 인연을 유지 하여, 병원에서 줄리엣을 봐주던 로미오는 줄리엣이 사라진 것을 알고 그녀를 찾아 떠난다.
바네사의 도움을 통해 로미오는 자신이 줄리엣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미련하다고 하기엔 정말 경박한 표현이겠지만 읽는 내내 답답함과 괴로움을 자아내는 줄리엣의 모습에 고구마 몇십개는 먹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남편이 사악하고 폭력적이니 아내가 무력해지는 것은 거의 최면과도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도록 몇번이고 인격 모독을 당하는데도 정신 차리고 자기 인생을 지켜내지 못한 줄리엣. 그 줄리엣이 드디어 각성(?)하고 그 악마에게서 벗어나기로 하는 데 까지 겪어야 했던 일이 '자연유산'인 것 처럼 소설을 묘사하고 있다. 줄리엣의 할머니나 로미오 조차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엔 다 의미가 있다' 이러면서 자연유산을 겪고 드디어 빠져나오게 된 줄리엣에게 안도감을 표시한다.
이 무렵 내 머릿 속엔 계속 오래전부터 내 친구가 해오던 말이 떠올랐다.
"지인지조."
지 인생 지가 조진다고..............
스릴러 와이프물 (소설 <나를 찾아줘> 같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런 고구마를 읽으니 답답한 감도 있었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힐링 스토리'라고 하는 듯 하다. 아마 작가의 작품들이 힐링 계열인 듯 하다.
이전부터 느낀 건, 정말 나는 '힐링물'을 싫어한다는 점.
우여곡절 끝에 결국 줄리엣과 로미오는 만나게 되고. 줄리엣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바네사는 줄리엣의 간호사 동료인 연상남 기욤과 사귀고 있다. 소설 전체가 로미오, 줄리엣, 바네사 시점의 이야기로 진행이 되는데. 이 십대 바네사의 연애관이나 인생관을 서술하면서 줄리엣과는 달라질 인생을 연상 시키는 듯도 하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바네사의 이야기는로미오에게 '자상한 오빠' 역할을 입혀 준다는 것 정도 말고는 있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다 읽고 나서 큰 감동이나 여운, 충격.. 그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할.. 뻔했는데 끝에 울컥한 부분은 있었다.
스포주의.
줄리엣의 할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날 한시에 죽기 위해 자살을 하기로 결심하고 줄리엣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에 쓰여진 글들은 인상적이었고 좋은 교훈이었다.
—-본문—-
좀 더 부드럽게 안아달라고 말하면 그이는 내가 꽉 막혔다고 대꾸한다. 요구하는 몇몇 행위들이 내키지 않지만, 그이는, 모두들 아주 잘만 하는 거라고 단언한다. 말루 할머니는 내키지 않는 행위를 억지로 하고 살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로랑은 나를 싫어할 것이다. 너 같은 여자는 한 트럭이나 찾을 수 있어, 로랑이 노상 하는 말이다. 그이가 날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나는 때로 꾹 참고 받아들인다
“난 그래. 그러니 이제 나 좀 그만 귀찮게 해. 자기야, 착하지, 응? 우리가 이렇게 함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 않아? 내가 없었어 봐, 넌 아마 여태껏 혼자였을걸. 그런 생각은 못하는 것 같더라.”
노화에 혼자 맞선다거나, 양말처럼 안으로 뒤집혀 졸아들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저 할머니들과 비슷해지는 나를 대면할 자신이 없어.본격적인 쇠락은 입에 더 이상 틀니도 끼울 수 없을 때 시작된단다. 입술이 입 안으로 함몰되고 등이 점점 굽어가다가 사지가 움츠러들면서 몸이 태아의 자세가 되어버리지. 결국 태어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거라고 할까. 피부는 빨랫줄에서 말라가는 이불처럼 뼈에 들러붙어 축 늘어지고, 오감을 잃으면서 인간적 품위마저 잃게 되는 거야. 아니, 난 정말이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구나.오늘 밤 우리는 인간적 품위를 끝까지 간직한 채 떠나려고 해. 왜냐하면 둘 다 그것을 몹시 바라고 누구도 우리에게서 그 염원을 박탈할 수 없거든.
로미오는 매력적인 남자야, 너의 천사, 그가 네 곁에 있어. 그와 함께 떠나버려, 제발. 비록 당장은 자명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고 남자들한테서 좀 떨어져 있고 싶겠지만. 그를 받아들여, 천천히, 차츰차츰. 그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거다. 너도 처음부터 그이에게 단단히 애착을 느끼지 않았니? 그러니 토양이 얼마나 비옥하니.
난 너를 버리는 게 아니야, 줄리에트. 나는 이 세상에 들렀다 가는 것뿐이고, 우리 모두 이 세상에 들렀다 가는 거야. 그러니 겸손을 머릿속에 심어두는 게 좋을 거야. 난 널 버리는 게 아니야, 왜냐하면 내 영혼과 가슴속에 널 담아 데려가니까. 왜냐하면 난 널 누구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게 사랑하니까.
늘 너 자신을 존중하고 남한테도 존중받게 하겠다고 약속해주렴.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하고, 널 해롭게 만드는 것들을 피하겠다고 말이야.
우리 모두에게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알아주는 진심 어린 사랑이 필요하고, 그걸 느낄 필요가 있단다. 그런 가운데에서야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은 채 두려움 없이 만개할 수 있어.
우리는 자기 선택의 총체이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의 총체이기도 하다. 그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후회는 과거를 바꿔놓지 못하니까. 반면 후회가 현재를 퇴색시킬 수 있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혼자가 아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선은 나 자신을 되찾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나는 우주에 질문을 던졌고, 아이와는 상관없이 나는 나 자체로 온전한 존재임을 확인받았다.나는 행복하다.
네가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중요한 이 두 가지 단어를 꼭 기억했으면 해. 나도 더러 이것들을 잊을 때가 있어서 늘 기억하도록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야.자명함_ (명사) 진실이나 사실을 알기 위해 다른 증명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확실하게 인정되는 성질.존중_ (명사) 누군가의 가치를 인정하고 우러르며 그에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하게 되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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