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소설/리뷰] #465 듄 (프랭크 허버트 장편소설) 1권 - 무앗딥의 각성 본문
영화 <듄>을 보고 멍하고 지루한 기분이 든 사람이 나뿐일까... 극찬하는 사람들은 극찬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하게 될 법한 영화였다. 딱히 흠 잡을 건 없지만 그냥 재미가 너무 없고 지루했던 게 문제였는데.
<듄> 의 소설을 읽어보았고, 과거의 <듄> 영화도 보았던 직장 상사가 열띤 태도로 듄의 배경을 설명해줬고, 난 소설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 대단한 뭔가가 있겠다 하고.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건, 영화가 소설에 묘사된 장면과 세계관을 잘 구현해냈단 것이다. 세세한 동작이나 장면, 사물까지도 아주 잘 재현했다. 다만. 그 잘 재현된 점을 소설을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듄은 '아라키스'라는 사막 행성을 말한다. 이 행성은 우주 항로 계산의 필수품인 '스파이스'를 생산해낼 수 있는(거의 유일한 행성) 곳인데, 프레멘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원주민과 스파이스... 마치 과거 동인도회사와 후추에 관련된 역사가 떠오르기도 하고. 미국 원주민을 살해하면서 그 땅을 점령한 미국 역사가 생각 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우주 황제의 허락하에 이 행성의 지배를 맡고 있던 것은 하코넨 남작이다. 그는 비대하고 탐욕스럽다. 아트레이디스 가문은 황제의 권력에 해가 되는 새로운 세력이다. 아트레이디스 레토 공작은 그 인품이 좋아 주변에 충신들을 많이 두고 있다. 전사 거니 할렉과 던컨 아이다호. 그리고 인간 컴퓨터로 불리는 맨타트 계급의 하와트. 공작에겐 정식 아내가 없고, 첩인 제시카가 있다. 제시카와 레토 사이의 아들이 '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상당히 '메시아'적인 인물로 소설에선 그려지고 있다. 프레맨들 사이의 전설에는 '무앗딥'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있고, 제시카가 속해있는 종교 단체인 '베네 게세리트'들에겐 약 90대를 거치며 유전자 조합과 태생을 조작해 탄생시키고자 했던 초월한 존재인 '퀴사츠 헤더락'이 있다. <듄> 1권은 폴 아트레이디스가 무앗딥이자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선 챠니를 굉장히 신비스럽게 그렸다. 폴은 마치 무슨 신의 계시라도 내렸는지 꿈과 환영을 통해 챠니를 알게 되는 것 처럼 나오는데. 사실 이건 아라키스 행성의 스파이스 가득한 사막에 노출된 폴의 '퀴사츠 헤더락'으로서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각성화되면서 생긴 '예지 능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폴의 의식이 흐릿해지고 그 안에서 보게 되는 것들은 수많은 가능성이 연결된 과거, 현재, 미래를 폴이 보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모두 고도로 발달된 뇌와 세포의 작용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소설 <듄>에서 설명하는 것 처럼, 소설 속의 인류가 지능을 모방하는 기계에 반기를 들고 모든 컴퓨터를 배제하고 인간의 두뇌만을 고도로 강화시킨 미래에 살고 있단 점을 알지 못하면 폴의 이러한 예지하는 능력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영화에선 이런 배경과 폴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무튼 이러한 영상미 속에서 챠니만이 그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이득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챠니가 폴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됨에도 불구하고 챠니의 비중은 소설 1권 내에서 그리 크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보단 폴의 어머니 제시카의 시점이 더욱 많이 그려지고 있다. 목소리에 힘을 실어 사람을 조종하거나 죽일 수 있는 베네 게세리트인 제시카는 레토 공작을 위해 아들을 낳은 사람이다. 베네 게세리트 종족은 철저한 계산을 위해 제시카가 딸을 낳게 하려 했지만 (베네 게세리트는 대를 이어 딸만 낳음으로써 남자인 퀴사츠 헤더락을 탄생시키려고 했다) 순서를 거스르고 남자아이인 폴을 낳았다. 폴은 자신에게 괴물같은 능력을 주고 교육시킨 어머니에게 일종의 증오심을 갖고 있다.
이야기는 영화에서 그려지듯, 황제가 아트레이디스 가문에게 아라키스를 정식으로 인계하면서 시작된다. 아트레이디스는 행성을 지배하고 있던 하코넨 남작 가문을 몰아내고, 프레맨을 장악하여 스파이스 생산업무를 총괄하는 미션을 가지고 아라키스로 떠난다. 하지만 이는 아트레이디스 가문의 세력이 커져서 자신의 세력에 방해가 되는 것을 감지한 황제가 꾸민 계략이었고. 레토 공작은 하코넨 가문의 스파이에 의해 살해된다. 폴과 제시카는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몰래 살아남아 프레맨 부족에 합류하였고.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의 능력을 통해 프레맨에게 '대모'로 추앙 받게 되었고. 폴도 그의 전투 및 신비한 예지 능력 때문에 이후 3년간 '무앗딥'으로서 그들에게 추앙 받는다.
영화는 여기까지를 그려냈고. 소설 1권에선 이 다음부분이 전개된다. 폴과 챠니 사이에 아들이 생기고. 제시카는 공작이 죽기 전 임신하고 있었던 딸(폴의 여동생)을 낳는다. 3년간 이들을 프레맨들에게 동화되었고, 스파이스에 중독되어 눈알이 푸른색으로 물든다. 하코넨 남작은 자기 후대를 이을 페이드 로타라는 조카를 양성시키고 있었고, 폴과 제시카의 생존에 대해 알지 못했다. 폴이 죽은 줄 알고 밀수업자들과 결탁해 살아남았던 거니 할렉은 스파이스 기지를 침략하던 중 폴을 재회하여 폴의 부하가 된다. 아라키스 행성을 감시하고 있던 황제는 자신의 군대 사다우카가 프레맨들에 의해 격파당하고 '무앗딥'이라는 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우주 조합과 함께 아라키스 행성을 침략한다. 이 과정에서 폴의 여동생 알리아가 황제에게 납치되고(그러나 영악한 알리아가 직접 납치된 것이다), 남작과 황제는 '무앗딥'이 폴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알리아는 기지를 발휘해 남작을 '곰 자바' 독 바늘로 살해하고, 황제의 사람들이 당황한 이 때 폴이 황제의 우주선 앞머리를 폭파시켜버린다. 폴은 황제에게 직접 항복하고 자신을 보러 오지 않으면 스파이스 생산시설을 모두 파괴해버릴 것이라고 협박하며(스파이스가 없으면 조합은 모두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협박이 통할 수 있다) 황제와 베네 게세리트 대모, 페이드 로타가 프레맨의 부지에 오도록 한다. 폴은 자신이 퀴사츠 헤더락이며 목소리의 힘으로 대모를 죽일 수 있음을 증명하고, 대모는 겁을 먹는다. 폴은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황제의 딸 '이룰란 공주'와 결혼 하겠다고 황제에게 '명'하고, 대모는 직접 황제에게 폴의 말대로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룰란 공주 역시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챠니는 걱정하지만, 제시카가 챠니에게 너는 첩으로 살게되지만 역사는 우리를 '아내'라고 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1권이고. 사실 초반부는 소설조차도 너무 지루했는데, 그건 듄이라는 소설의 종교관, 세계관을 설명해나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선 폴이 퀴사츠 헤더락다운 지혜를 발휘하는 부분과 거침없는 예지, 전투, 격파 장면들이 빠르게 전개되어 훨씬 즐겁게 읽었다. 솔직히 후반부 때문에 2권을 읽어보고 싶게 된다. 역시 책 1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떡밥과 중요한 존재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가 왜 모든 걸 담지 못했는지, 혹은 담지 않았는지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모래사막의 괴물인 모래벌레(샤이 훌루드)는 이 사막행성의 스파이스 생산 생태계의 중심이고, 앞으로 폴이 이 황무지를 동식물이 있는 행성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란 예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장차 폴의 라이벌이 될 줄 알았던 페이드 로타는 그 박력있고 야만적인 초반부의 등장이 무색하게.... 1권 후반부에서 폴에게 살해당한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남은 5권의 소설에서 어떤 인물들이 등장해서 또 새로운 이야기들을 할지 기대가 되긴 한다.
누군가 말하길, 메시아 존재로 그려지는 폴은 사실 히어로가 아니고 안티히어로라고 한다. 히어로의 위험성에 대해 작가가 경고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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