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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tante Zen

[소설/호러]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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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호러]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Zen.dlt 2016. 8. 23. 00:35
이름도 왠지 공포스러운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단편 모음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을 읽었다. 이미 「남의 일」에서 한번 히라야마 스타일에 꽤 충격을 받았었는데, 훨씬 이 전에 출간된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도 과연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자가 나락으로 빠지고 지위와 목숨을 잃는 데는 예기치 못한 느닷없는 사건이 관여하는 법이다. 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약한 자가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안이함을 깨닫고 다시 절망하게 되기도 한다. 모두 '상실'과 연관되고, 이걸 그로테스크한 묘사와 이어주면 실감나는 '호러'가 된다.  「오메가의 성찬」, 「오퍼런트의 초상」, 「괴물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에는 자기 분야에서는 꽤나 '성공'했거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자들이 나온다. 그들이 타락해 가는 이야기는 꼭 스릴러 영화를 보는 느낌을 들게 한다.  「니코틴과 소년」, 「소녀의 기도」엔 지독한 이지메를 당하는 약자와 끔직한 폭력이 등장한다. 「오메가의 성찬」과 「끔찍한 열대」에는 어두운 사회에 빠져들어 존엄도 가치도 잃은 자들이 나와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한다. 위와 아래의 인간들이 지위를 다양하게 조합하여 8개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남의 일」은 이미지에 의존해 감각적인 호러를 주는 단편들이 많았는데,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정황과 플롯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더 이성적인 호러에 가깝다.

히라야마 유메아키는 일본에서도 꾸준히 여러 호러 단편들을 써내고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단행본이 아니라 괴담 모음집 정도인지 아쉽게도 국내 번역 출간책이 더이상 없다. 이젠 히라야마 원본까지 사서 봐야하는 건가 싶은 막연한 답답함..... 


1. 에그 맨
범죄자 에그 맨과 여성 수사관 카렌의 심리 싸움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 살해 현장에는 반드시 달걀 껍데기를 남긴다고 해서 에그 맨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정치적, 사상적 대화를 통해 카렌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동시에 옆방에 수감된 덜떨어진 겁쟁이 죄수를 덤덤한 말투로 파괴시켜 나간다. 이윽고 옆방 죄수를 심리적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몰아세우는데... 정신 없는 얼토당토한 정치 이야기는 딱히 흥미로울 것도 없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을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작품. 

2. 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
부잣집 도련님 '타로'는 학교에서 근거 없는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 사장님인 아버지는 마을의 권력가로, 모두가 아버지와 타로에게 친절하다. 아버지는 '미움을 받는 데는 미움을 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타로는 어느 날 호숫가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노인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어느 날 밤 노인의 신체적 특징을 엿보게 되고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억압받는 취약계층들에게서 '핍박 받는 이유'를 갈구하고 자기를 돌아보고자 한 타로가 진짜 무차별 무근거 폭력을 마주했을 때 변모해 버리고 마는 것이 여러가질 생각나게 한다.

3. 오메가의 성찬
'나'는 수학가로서의 재능과 꿈을 포기하고 한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조직엔 서커스 단체에서 사들여온 거구의 남자 '오메가'가 있다. 오메가는 조직에서 죽인 시체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나'는 오메가의 건강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오메가의 특별한 능력은 그가 죽은 자를 지식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학생 시절 동료 '데바'를 만나고 그가 '리먼 정리'를 다 풀어낼 것이란 말을 듣는다. '나'는 오메가에게 '데바'의 지식을 흥정하고, 오메가 역시 거래 조건을 내건다. 냄새나고 그로테스트하지만서도 블랙 코미디 요소가 돋보이는 결말이 인상적. 

4. 소녀의 기도
'후미'는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집에선 의붓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다. 어머니는 신흥 종교에 빠져 후미를 외면할 뿐이다. 동네에 연쇄 살인마가 나타나 여러 성인이 살해되었는데, 그 중엔 후미에게 몹쓸 짓을 했던 동네 남자도 들어있다. 후미는 연쇄 살인 피해자들이 발견된 장소를 돌며 미친듯이 살인마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살인마가 갑자기 백마 탄 왕자로 둔갑하는 괴랄한 소설이 여기있다.

5. 오퍼런트의 초상
시대는 스키너의 '종으로서의 인간은 실패한 생물이다' 라는 사상과 오퍼런트(일종의 세뇌적 교육)에 의해 돌아가는 미래. '나'는 인간의 오퍼런트 이수를 감시하고 예술을 음유하는 시민을 적출해내는 '스키너부'의 엘리트 요원이다. 어느 날 '나'는 이단으로 의심되는 카논이라는 여자의 감시를 맡게 된다. 그리고 뻔하지만서도 '나'는 카논에게 점점 이끌리기 시작하고... 사이언스와 호러가 적절히 접합되어 있다.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가장 적은 이야기. 

6. 끔찍한 열대
가게를 열기 위한 계약금을 사기당한 '히로'는 어린 시절 헤어진 끔찍한 아버지 '도부로쿠'를 만나 그의 '사람을 죽이러 가자'란 제안에 응한다. 둘은 필리핀 근처 어딘가의 열대 정글에 도착하는데, 끔찍한 식인 동물들이 득실거릴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의 게릴라전이 한창인 사나운 장소이다. 도부로쿠는 '고'라고 하는 조직의 배신자를 찾아 처단하면 현상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고가 세운 왕국으로 침입하던 그들은 고의 부하들의 습격을 받고. 정신 차린 히로의 눈 앞엔 주지육림같은 미개하고 잔인한 정글 원주민의 생활이 드러난다. 제목처럼 끈적 거리고 습한 이야기. '희망'이란 없다는 메세지가 느껴지기도.

7.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유효 투영범위와 왜곡 정도를 특정하게 조정한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 시점의 이야기다. 지도의 주인은 연쇄 살인마로, 죽여서 처리한 시체들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고, 지도 역시 그에게 '적당한 장소'를 제공하는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느 날, 주인이 가져온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를 그려넣은 사람 가죽이 나(지도)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지도는 사람 가죽에 대한 질투와 주인에 대한 분노를 품기 시작한다. 살인마의 심리는 최대한 배제하고 지도의 덤덤하고 웅변적인 말투가 주를 이룬다. 길과 경로를 선택하는 것이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지도의 의지에 영향을 받는다는 기발한 상상에 의거한 이야기. 

8.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잔인하고 완벽한 고문 전문가 '엠시(MC)'. 파트너 '타타르'가 자살하자 보스 '돈'은 엠시에게 '한푸'라는 전직 의사였던 남자를 조수로 붙여준다. 엠시에게 주어진 다음 고문 대상자는 '코코'라는 여자로, 쓸모없어진 매춘부라 조직에서 처리하려고 엠시에게 넘겨졌다. 엠시는 코코를 고문하고는 잠시 의자에 등을 대고 누워 잠을 청하며 꿈 속에서 안정을 얻는다. 다시 고문을 시작했는데, 끔찍한 고문 속에서 코코가 엠시에게 '꿈' 속 내용을 암시하는 말을 건넨다. 동요한 엠시. 꿈을 완벽히 자기 뜻대로 조절하는 엠시의 능력이 코코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신체 개조, 파괴에 대한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다른 이야기에 비해 가장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 기본적으론 오메가의 성찬과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