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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뷰] 장난감 수리공(고바야시 야스미 호러)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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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뷰] 장난감 수리공(고바야시 야스미 호러)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Zen.dlt 2016. 9. 29. 13:02

고바야시 야스미는 데뷔작  「장난감 수리공(1995)」으로 제2회 일본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 계열에 오른다. 작가이자 공학자이기도 한 이력 때문에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된 이야기를 통해 독특한 작품을 써온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국내에 출간된 《장난감 수리공》은 단편 〈장난감 수리공〉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를 엮은 단편집이다. 

〈장난감 수리공〉은 남녀의 대화로 시작된다. 여자는 낮에 선글라스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소녀 시절, 여자는 실수로 육교에서 굴러 업고 있던 남동생 미치오를 죽여버린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여자는 '무엇이든 고치는 장난감 수리공'을 찾아간다. 소문에 의하면 수리공은 무엇이든지 한 번 완전히 분해한 후에 재조립해 고장나기 전과 똑같이 고친다고 하는데... 〈장난감 수리공〉은 괴물 같은 존재에 대한 생리적 공포를 자극하며, 마치 재촉하며 듣고 싶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는 이야기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에서 주인공 '지누'는 술집에서 생면부지의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우리는 사실 아는 사이입니다'하고 말한다. 남자 '시노다'에 의하면 두 남자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기 위해 뇌의 특정 부위를 파괴하는 수술을 했다. 사랑했던 여자 '데고나'를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모험이었던 것. 시노다와의 만남이 지누에게 비극의 씨앗이 된다. 인간 정신상태 묘사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소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매우 원초적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단지 '뇌'가 일으키는 고정된 착각이라고 한다면 대체 나는 누구이고 우주는 뭐란 말인가. 세상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법칙과 규칙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미스테리를 마주하면 인간은 '물리적'으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해 심적 안정을 얻고 싶어한다. 작가는 알고 있는 현실들이 무너져 내리는 초현실적 공포를 그대로 본문에 옮긴다. 「세계도 없다. 데고나도 없다. 그러한 공포를 잊기 위해 나는 내 몸을 손톱으로 긁어 상처를 낸다. "난 누구지." "넌 누구야." (214 p)」  이 단순명료한 질문이 위압감을 갖게 하는 것이 고바야시 이야기의 힘이다. 

책에 실린 두 단편과 비슷한 무대장치를 다른 소설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의 배경이 병원이라는 점에서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이 연상되고, 주인공이 자주 길을 잃는다는 설정은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을 연상시킨다. 또 자연법칙을 벗어난 생명력을 지닌 존재에 대한 묘사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단편 《재생》, 오츠 이치의 《암흑 동화》를 떠오르게 한다. 하나의 작품을 읽고 다른 작품들이 생각나는 건 매우 좋은 현상인데, '비교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 발상 자체가 쇼킹한 〈장난감 수리공〉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로테스트한 장면을 서슴없이 묘사하고 있어 더욱 극적이며, 오츠 이치, 히라야마 유메아키 등 그로테스크한 묘사에 한 가닥 하는 작가들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과학적 견해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시켜 비극에 대한 몰입도를 증대시킨다.  

21세기 미스테리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홍콩 작가 찬호 께이는 "새로운 과학지식으로 작품을 지탱하거나 심지어 그런 과학적 원리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만약 《장난감 수리공》이 미스테리 소설이었다면 찬호 께이의 견해에 딱 들어맞는 소설이지 않았을까. 
고바야시 야스미는 과학 지식을 내세운 호러소설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훌륭히 증명해 낸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은 추천. 두 번 추천. 세 번 추천.


본문 중> 

● 〈장난감 수리공〉
「그러니까 공짜로 아이들 장난감을 고쳐 줬다는 그 장난감 수리공은 '요그소토호스후'나 '크트루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불렸고, 국적과 성별은 불분명했다는 거야? (13 p)」

「그러다 발을 헛디뎌서 미치오랑 같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어. 미치오는 내 밑에 조용히 깔려 있었어. 간신히 몸을 일으켜 미치오를 잘 살펴봤는데 피는 아무 데서도 안 나더군. 하지만 움직이질 않더라고. 미동도 없었어. 그리고 숨도 안 쉬었지. (19 p) 」

「요그소토호스후는 벽장에서 다양한 도구를 꺼내와서 장난감을 분해해. 예를 들어 장난감 자동차는 쇠망치와 드라이버로, 인형은 커터칼과 가위로. 산산히 분해할 때 늘 뭐라고 중얼중얼해. (26 p)」

「그리고 그걸 전부 쫙쫙 펴서 다다미에 늘어놨지. 옷 다음에는 종이 기저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종이를 한 장 한 장 찢어지지 않도록 벗겨 냈어. (30 p)」

●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나랑 같이 의학부 편입 시험을 쳐."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라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학부에 가는 거야." 제가 대답하지 않자 안달이 났는지 당신은 다시 말했습니다. (중략) 당신은 호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만 한 암갈색 덩어리가 든 비닐봉지를 꺼냈습니다. "데고나야. 의학이 충분히 발달되면 회복시킬 수 있을 거야." (96 p)」

「"과연 인과율을 물리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인과 결과는 상당히 애매한 개념이야. 이게 원인, 저게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지성이 있는 인간 뿐이지. 기계로 측정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내 생각에 원인은 결과에 앞선다는 말은, 시간은 역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아. 그저 일상의 체험을 말로 풀어냈을 뿐이야. 인과율을 물리 법칙이라고 여길 근거는 빈약해." (109 p)」 

「"존재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게 아니야. 관찰함으로써 현상이 실체화하는 거라고." (중략) "하지만 그렇다니까. '파동 함수의 수렴'이라고 불리는 양자 과정이야. 그리고 이 과정은 역전되지 않아. 관찰을 멈춰도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지. 양자 역학은 시간의 방향과 관계가 없을 테지만 의식이 개입함으로써 역전이 불가능해져. 무슨 뜻인지 알겠어? 시간의 흐름은 의식의 흐름이야. 의식의 흐름을 조종하면 시간의 흐름도 조종할 수 있어." (114-115 p)」

「"그것들을 모조리 다시 쌓아 올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다음 날에는 모조리 실체를 잃고 파동 함수라는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191 p)」

「"이해력에 한계가 있는 우리의 뇌가 너무나 복잡한 세계와 대면했을 때 망가지지 않기 위해 뇌 스스로 설정한 안전 장치, 그게 인과율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는 우리 뇌 속의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203 p)」



결말 요약 (스포일러! 미리니름 주의)>

 〈장난감 수리공〉:  '그녀'는 장난감 수리공이 죽은 동생 미치오를 산산히 분해했다 재조립해 그를 되살려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데, 듣는 '남자'는 이런 일화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마치 '그녀'의 단순한 지인인 것 처럼 그려지지만 마지막에 '그녀'와 대화하고 있던 남자가 사실 다름아닌 미치오였단 사실이 밝혀진다. 

●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뇌 부위를 파괴하는 실험을 한 탓에 '시노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게 되고, 매번 실험 이전에 이미 획득했었던 '결과(외과의 신분, 강연 성공 등)'를 얻기 위해 수만 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다양한 반복 속에서 현재 시노다의 이야길 듣는 지누는 시노다와 만난 적도 없는 것 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지누에게 '시간 역행을 인식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 뿐. 지누 또한 계속 '루프'하고 있었음을 인식해 버린 순간  평행 세계들이 오버로크된다. 게다가 지누의 아내는 심지어 이미 죽었던 '데고나'라는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