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소설/서평] 삼체 (류츠신) - 어서오세요 삼체 세계 본문
어쨌든 여전히 중국 문학에 빠져들고 있는 시기다. 중국서적을 뒤지던 중 서평이 대단한 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류츠신 작가의 「삼체」. 읽어보니 "아 왜 삼체 삼체 하는가 알겠네." 싶은 기분. 인류와 외계인의 조우를 세기말적인 공포와 상실감을 뒤섞어 표현해낸 스릴 넘치는 SF 작품이었다.
주인공 '왕먀오'는 나노 물질을 연구하는 응용과학자인데, 느닷없이 군인에게 인솔되어 비밀스런 군부 작전 회의에 참가한다. 군인들은 왕먀오에게 일부 과학자들 모임인 '과학의 경계'의 목적과, 회원 '양둥'의 자살에 대해 아는 바를 추궁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왕먀오는 스창의 도발에 이끌려 '과학의 경계'의 동향을 살피는 스파이(?)가 되고. 집에 돌아와 취미로 사진을 찍는 왕먀오의 눈에 별안간 이 세계의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숫자가 찍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놀란 왕먀오가 '과학의 경계'의 유능한 여과학자 '선위페이'를 찾아가 기이한 현상의 이유를 아는지 묻고, 그녀는 "나노 입자 실험을 중지하세요." 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한편 선위페이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삼체'라는 첨단 VR 게임에 접속한 왕먀오. 태양의 운동법칙을 찾아 생존을 모색하는 '삼체' 문명인이 되는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왕먀오는 몇 개의 문명이 멸망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삼체 게임의 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새벽에 난데없이 왕먀오를 끌고간 군부가 '세계종말'을 암시하며 급박히 움직이는 모습, 기적적인 현상을 보고 우왕좌왕하는 왕먀오. 미스테리적인 요소들 덕에 전반부는 매우 흡입력이 높다. 과학 발견과 법칙들이 나오며 전문적이고 다크한 오라를 풍기는 것이 마치「링」 시리즈의 어두컴컴했던 분위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삼체라는 게임을 디테일하게 설정하고 과학 법칙을 문장 속에 녹여낸 부분이 인상적이다. 삼체 초보자 왕먀오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삼체 세계는 독자에게도 놀라운 인상을 준다. 과연 "정말 류츠신의 삼체가 현실에 있는 이론인 건가?" 하고 고민해보게 할 정도. 과학 이야기는 점점 더 자주, 그리고 폭넓게 소설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류츠신의 철저함을 엿보이게 한다. 왕먀오의 나노 물질을 이용한 대형 작전(!)은 지식에 기반한 상상력의 도가니란 감상. 한편 예원제(양둥의 어머니)의 전기와도 같은 중반부. 우주와 인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도 개인의 인생을 깊이 묘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류의 존망이 분노 서린 인간의 선택에 의해 큰 위기를 맞게 되다니! 이런 드라마틱한 연출이 소설의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지 않았나 싶다.
「삼체」는 류츠신의 '지구의 과거' 시리즈의 한 편이다. 「삼체」를 다 읽고보니, 어딘가 미완성적인 결말 부분도 연작 소설의 특성이란 생각이 든다. 전반부에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들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모두 이해되기 시작하니, 명쾌한 것도 말할 게 없다. 다만, 소설 맨 앞으로 돌아가 다시 상기하지 않으면 '아 그랬었지 참' 하게 될 정도로, 이야기가 길고 장면 전환이 꽤 많았는데. 현실 세계, 삼체 게임 세계, 예원제의 과거 등을 연달아 배치했던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삼체-2」 도 출간이 되었다는데. 「삼체」랑 이어지는 내용일까? '지구의 과거'는 어떤 작품인 걸까. 류츠신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건가 하는 등. 하아. 정말 여지껏 읽은 중국 소설은 실망할 여지가 없었어...... 이만 좀 다른 작품들에 눈을 돌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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