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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서평] 「머니론더링」 (다치바나 아키라) - 자금세탁 후 사라진 그녀를 찾아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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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서평] 「머니론더링」 (다치바나 아키라) - 자금세탁 후 사라진 그녀를 찾아서

Zen.dlt 2016. 9. 27. 09:32


홍콩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로서 일본인의 자금세탁을 도우며 살아가는 구도 아키오. 어는 날 수제자와 같은 마코토의 소개로 와카바야시 레이코라는 여성의 의뢰를 받게 된다. 여자의 의뢰는 5억 엔의 자금을 해외 계좌를 이용해 세탁하는 것. 아키오가 아는 선에서도 레이코의 의뢰는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아키오의 천재적인 수법으로 레이코는 목적을 달성하고 일본으로 떠난다. 이후 홍콩에 남아있는 아키오에게 구로키라는 야쿠자가 찾아와 레이코가 50억 엔을 들고 사라졌다고 하며 행방을 묻는다. 이제 아키오는 구로키에게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사라진 레이코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수수료 보다도 어쨌든 미인이니까 찾고 보는 듯한데). 아키오와 레이코의 만남, 그리고 구로키의 방해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그들을 몰고 가 충격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머니론더링》은 금융시장의 법칙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버블 경제 시절의 금융 위기, 테러에 의해 미국 주식 시장이 막혀 버린 사건 등, 실제 현실을 배경으로 다양한 묘사가 나온다. 주로 아키오가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고객에게 설명하거나, 혹은 속으로 생각하는 내용들에서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비슷한 법도 다양하게 변모한다는 것을 이용해 
어떤 상황에도 '마스터 카드'를 내놓는 아키오의 모습은 전문가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하지 않나 싶다.

소개되는 금융 지식만 모아놓아도 책 한 권을 될 것 같지만 
《머니론더링》은 소설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겸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를 매우 잘 잡아 놓았다. 교활한 지식을 갖고 있고 두뇌 회전도 빠르지만 고국을 떠나 유유자적하고 있는 아키오의 모습은 어딘가 신비로우면서도 시크하다. 그런 그가 실은 '그땐 그랬지'라고 하는 뼈저린 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은 그를 더욱 매력적인 고독남으로 만들어주기 충분하다. 아름다운 품격을 지닌 레이코의 모습 또한 뭇 남성 독자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여성 독자에게는 어필하지 못할 것이다만). 게다가 레이코와는 반대로 귀여운 매력을 보이는 아키오의 여자친구 메이의 존재도 발랄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그 외 돈이 되면 뭐든 한다는 홍콩 사람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아키오의 동료 창도 빼놓을 수 없는 씬스틸러다. 각 캐릭터의 성격, 이력, 관계성이 모두 저자의 인물 디자인 능력 디테일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토리 자체도 매우 견고하다. 형식으로 보자면 홍콩과 일본을 넘나드는 뒷 돈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스릴러 소설과도 같다. 아키오는 레이코를 찾기 위해  레이코의 계좌부터 추적해 있을 만한 장소를 유추해내고, 흥신소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덧붙여 레이코의 의식 흐름을 더듬어 나가려고 한다. 어떤 현상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고 형사적 추리를 해나가는 아키오의 모습에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완성. 게다가 야쿠자와 불법 전문가들이 한데 뭉쳐 돈을 쫓는 상황이 이야기를 스피드하고 스릴있게 전개시킨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안 끝났어!"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한편 야쿠자 구로키의 눈을 피해 아키오와 레이코가 만나는 장면은 7080 유치한 성인 애니메이션 같기는 해도 나름 애잔하고 몽환적이었다. 

안타까운 건 차라리 이 책이 적어도 두 개의 이야기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점이다. 저자 다치바나 씨는 금융지식을 너무나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치밀해도 너무 치밀했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금융지식들은 결국엔 한 데 뭉치기를 거부하고,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으로도 여겨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린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아키오는 자기 논리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무슨 금융 규칙이든 구구절절 설명하고 긍정할 수가 있다. '그게 가능하다고?' 라고 묻기 이전에, '설명은 됐고 좀 움직여!' 하고 싶어지기도(우리는 444페이지나 읽어야 했어). 

두번째로 안타까운 건 아무튼 전문 용어에 각주를 다는 데 인색하다는 점. 오프쇼어, 텍스헤이븐 등 사전에 설명되어 있는 단어 이외에도 본문에 각주가 달려 있다면 이해하기 좋았을텐데. 역자가 직접 각주를 달아 출판 하는 책들의 경우와 비교하면, 아무튼 용어나 배경지식 설명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머니론더링》의 매력적인 점은 끝이 없다. 홍콩과 일본 거리의 모습을 진짜로 보고 있는 것 처럼 실감나게 묘사한 것도 흥미롭다. 또 금융 이야기 속에 아키오나 레이코 등의 과거 이야기를 삽입해 놓은 것도 스토리를 풍부하게 한다. 이 소설을 '스릴러' 장르의 한 소설로 본다면, 금융과 추적이란 소재를 엮은 것도 참신한 편이 아닐지. 인물간의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대화법을 개선하면 좀 더 성숙한 문학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