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소설/리뷰] K.N의 비극 - 빙의현상으로 사회의식을 표한다 본문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받았다고 해서 추리소설이겠거니 하고 읽었다. 작가 이름만 보고 정통 추리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웬 걸. 빙의라는 심령현상을 각각 종교적 견해와 정신 과학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속에 추리 소설의 방식이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슈헤이는 성적 욕구와 나태함때문에 피임을 소홀히 한 결과 생긴 아이를 지우기 위해 돈, 직장 등 형편을 합리화하며 아이를 지우자고 아내 가나미에게 요구한다. 싫은데도 억지로 요구를 받아들인 가나미는 임신 중절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발작을 일으킨 후 빙의 증상을 보인다. 가나미에 씌인 혼령의 섬뜩한 모습이나, 집에서 일어나는 폴터가이스트 현상들은 읽는 사람의 간담도 서늘하게 한다.
1년에 34만 명의 태아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통해 목숨을 잃는다. 임신 중절 수술은 여자가 강간때문에 임신한 경우 등에 한해 합법이 적용된다. 작중 산부인과 전공의였다가 정신과로 옮긴 이소가이 의사는 모든 임신중절 수술이 그릇된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수많은 '원치 않은' 아이들을 죽인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소가이는 휴직 상태인데도 나쓰키 슈헤이 부부를 돕기로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주인공 슈헤이의 인격이 성장한 후 그가 하는 말에서 드러난다.
"피임을 하지 않으면 아기가 생긴다. 그런 것도 모르는 녀석들은 연애를 하지 말 것. 사랑이라는 둥 불륜이라는 둥 쾌락 추구라는 둥 그럴싸하게 말하는 매스컴이나 문화인들에게 호도되지 말 것. 울게 되는 건 여자고. 남자는 도망쳐 버리지. 연애라는 건 아기를 낳기 위한 도화선이라고." (366 p)
가나미에게 씌인 혼령이 가나미의 옛 친구 '나카무라 구미'였다는 단서를 얻은 후 구미에게 일어난 일을 조사하는 슈헤이의 주도면밀한 모습, 그가 조사 도중 겪는 괴현상들은 형식미와 압도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변모한 가나미에게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슈헤이의 심리묘사는 소설 전반의 문제 의식을 적절한 페이스로 이끈다. 또 슈헤이만이 아니라 이소가이까지, 등장인물의 성격이 입체적인 성장 과정을 보이며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점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소가이가 빙의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면서도 일련의 괴현상들은 억지로 과학으로만 해결하려 들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타 작품과 달리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책 한권 읽었다는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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