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Dilettante Zen

[소설/리뷰] 천국의 문 (김경욱 외) - 이상문학상 제 40회 당선작 모음 본문

Library

[소설/리뷰] 천국의 문 (김경욱 외) - 이상문학상 제 40회 당선작 모음

Zen.dlt 2016. 10. 26. 19:11



《천국의 문(김경욱 외)》은 이상문학상 제 40회 수상작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내가 이상문학상 작품들을 읽을 생각이 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는데. 아마 4월 쯤 서점에서 이 책을 소개 받았을 때에 받았던 어떤 인상이, 10월인 지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뽑아들게 만들었던 거 같다. 어쨌든 자주 읽는 부류의 소설이 아니라, 리뷰도 그냥 내 생각 닿는대로 마구 썼다(나중에 내가 읽고 기억만 하면 되지).

<천국의 문>은 혼자서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의 일생은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병 때문에 자기 꿈도 이루지 못하고 빼앗긴 것처럼 여겨진다. 아빠만 없었다면 자기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자문하는 여자는 아버지를 향한 양립적인 감정(애정, 증오)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한다(그리고 아마 애정은 어린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여자가 갖고 있는 도덕성에 근거하는 것 같다). 얼마 안가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가 죽길 바래왔던 자신의 욕망이 실현된 것처럼 느껴져 죄의식을 느낀다.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과학이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상처(죄의식)를 남기는지 보여줬는데.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내 인생은 이제 끝났어" 하는 표현이  애정이라곤 전혀 없는데도 씌워진 역할 때문에 죄의식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에 표현하는 것 같아, 지옥불같았다. 여기 어떤 죄인도 없고, 여자도 아버지도 탓할 수도 없는 곳에서, 여자의 죄의식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불편한 사실'인 건가. 

김이설의 <빈집>도 무게감이 확실히 다가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마련한 수정은 집 꾸미기에 열중했다. 블로그나 인테리어 잡지를 보고 쉽지 않았지만 취향의 인테리어를 고른 후 발품을 팔아 사진처럼 자기 집을 꾸몄다. 36살인 수정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집들이에 와선 면박을 주는 친정 엄마를 보며 젊은 세대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과 기성 세대의 획일화된 삶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집만 예쁘면 뭐 해. 이 집 삭막한 거 봐. 저 나이 되도록 애가 없으니까 쓸데없는 데 공을 들이잖아. 그렇다고 뭘 키우는 성격도 못 되지. 어떻게 집에 풀 한쪽이 없냐고. 그런 게 애는 무슨......" - 124 p

집들이를 할 때 마다 수정이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포기하고 아파트에 부족한 물건을 채워넣는 것이 불안해보였다. 

"무언가 계속 사들이는데도 무언가 계속 부족했다. 뭔가 계속 채우는데도 없는 것은 계속 존재했다." - 125 p

수정은 집들이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아파트 안에서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즐기며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문득 나는 혹시 한가롭게 순간을 감상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들은 다 조작되고 만들어진 풍류인 것인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아기라든가)이 빠져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사실을 속이기 위한 수단인 것인가 하고 묻게 되었다. 무엇이 궁극적인 것인지 질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수정은 자신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강요하는 역할과 자기 욕구 사이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읽는 나도 동화되었다. 집에 대한 집착은 컸고, 수정 조차 남편에게 '새 집에 걸맞는 모습'을 요구하는 상태가 되었다. 자기가 꾸민 공간들을 남편이 어지럽히기 시작하자 그 공간들도 보고싶지 않게 되었다. 분명 새집은 수정에게 행복한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이어야 할 터였는데. 수정의 욕심이 지나쳤던 건가. 수정의 내 집 꾸미기가 정말 독단적 욕심이었던 건가? (수정이 보기에) 정체성을 잃은 이 공간을 재정비하기 위해 결국 아기방이 필요한 거란 말인가? 

김탁환의 <앵두의 시선>은 초반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뒤에서 현실적이고 암울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윤이형의 <이웃의 선한 사람>은 평범한 행복을 얻은 남자에게 미친 정신병자 같은 이웃이 불안과 화가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였다. 황정은의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유럽 여행지에서 마흔을 넘긴 부부가 여행하다 겪는 피로와 낯선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남자는 여행을 전부 지휘하면서 얻는 부담감과 피로 때문에, 자기에게 의존적인(음울한) 아내에게 화를 내버린다. 아내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문이 닫히자 기차가 남편을 두고 떠나버린다. (사고로 아이를 잃고) 상막해진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길에 오른 것일텐데, 어쨌든 거기서 여자와 남자는 '로스트(lost)'되었다. 원래도 위태로웠던 것이 여행을 계기로 해서 튕겨져 나간 건가. 아니면 상실의 체험은 어딜 가더라도 몸에 들러붙는다는 것인지. <빈집>과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 가장 많은 질문들을 했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문학작품을 읽는 데 큰 재능이 없는지라.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문학성을 찾아내는 게 어려웠지만(이게 주로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내게 부족한 능력인가 보다), 심사위원들의 평을 보며 이해했다. 각 등장인물들에게 깊게 몰입하는 게 즐거웠고, 
어쩔 땐 상황이나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들을 그저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정형화하긴 어려워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면들이 각각의 이야기와 인물들에게서 느껴진다는 걸 새삼 인식했다. 원래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거겠지 하고 납득하는 걸로 마무리지어도 되는 걸까...?


「그때의 내게는 그 정도의 일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태평한 사내였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으나 아직 데뷔를 못해 앞이 보이지 않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아내에게 미뤘다는 죄책감과, 칭찬하는 페미니스트들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아이 보는 아빠로서의 미묘한 열등감에 매일 시달렸으며, 집 계약 갱신이 다음번에도 전세금 인상 없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과, 나날이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큰 걱정이 없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예외 없이 막대한 불안을 강요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에는 그 불안들을 일일이 느낄 여력이 없었다.」 - 225 p (이웃의 선한 사람)

「내가 그걸 챙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는 말했다. 
그 밖에 내가 뭘 더 부탁한 게 있어? 그거 챙기라고...... 가방에 넣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거 잊지 말라고...... 그냥 그거 하나...... 가방에 다 있잖아. 당신 칫솔, 화장품, 사탕...... 다 있는데 왜 그건 없냐...... 우리 내일 비행기 타야 돼...... 그런데 여권도 영수증도 없어...... 내가 이걸 다 설명해야 해 사람들한테...... 그런데 괜찮을 거라니...... 당신은 괜찮지 걱정이 없지 내가 다 하니까...... (중략)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쉬워 모든게......
그는 문득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서글픈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울화가 치밀어 고개를 저었다. (중략) 그런 식으로 보지 마.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 306 p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그녀가 내리기도 전에 기차가 그냥 가버렸다...... 아이 로스트...... 노, 노, 미스드...... 로스트...... 」 - 308 p (누구도 가본 적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