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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tante Zen

[도서/리뷰] 그레이맨 (이시카와 도모타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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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그레이맨 (이시카와 도모타케)

Zen.dlt 2018. 7. 31. 14:22

아직 이름을 떨치지 못한 신인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 깔끔함과 간결함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여기서 쾅 저기서 쾅' 하지만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미스터리 분위기를 풍기며 독자로 하여금 '대체 뒤에 뭐가 있는데?' 하고 생각하게 하려는 게 아닐까. 요컨대 '내가 익힌 모든 수법을 다 동원해서' 버라이어티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 같다.

이 소설 <그레이맨>의 기법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색채를 강조한 시각적 자극, 선정적 소재,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카리스마적 인물, 거대 음모 세력,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형사, 범인, 조력자, 피해자), 사연있는 인물, 액자형 구조. 옴니버스인 듯 아닌 듯 한 구조는 얼마나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이렇게 다 뒤섞어 놓은 작품이 끝에 가서 허무한 마무리를 지어버린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싶다만은 다행히 <그레이맨>은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특히나 '해설' 형태로 사건을 조망하며 인물을 상징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 자기가 자기를 해설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소설이라. 깜찍하지 않은가. 

'그레이맨'이라는 인물을 통해 위대한 자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며 본인의 의지를 관철하는가를 보는 건 꽤 감탄스럽고 즐거운 일이었다. 카리스마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란 걸 느꼈다랄까. 우린 그런 존재를 찾기 위해 작품에 몰두하는 것이고. 소설의 큰 맥락을 이루는 감정라인은 뒷부분에 가서야 등장하니 어느 정도 전개가 더디었고, 여기저기 블록버스터 요소가 너무 많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런 다양한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아주 매력적인 작품일 것 같다.


-본문 중-

“이 세상에는 꽃을 꺾는 쪽과 꺾이는 쪽, 두 가지밖에 없어. 힘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를 지배하지. 이 세상이 그런 구조로 굴러간다는 건 너도 지금까지 살면서 충분히 깨달았을 텐데?”

“약자는 항상 참아야 하고 자살자는 자업자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 태어나면서부터 걸머지는 불행도 빈곤도 모두 자기 책임이지. 심지어 아무 죄 없이 범죄에 휘말리는 것까지 내 잘못으로 돌려야 한단 말이야.”

“복수를 하기 위해 선행으로 나 자신을 이해시키다니, 우스운 일이지. 하지만 나는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야. 선악의 판단도 내리지 못해. 복수는 우리 인간에게 허락된 일이 아니지. 하지만 나는 반드시 허락을 얻어야 했어.”

“하지만 이 세상에는 법률에 의한 그 틀을 뛰어넘는 인간도 있어. 그건 범죄자의 경우만이 아니야.힘을 가진 자가 온갖 명분을 내세워 틀을 깨버리는 거야.”

복수심 같은 마이너스의 감정은 그것을 품은 자의 영혼을 소모시킨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그 같은 감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거기에 또 다른 감정이나 가치를 꿰어 맞춰서 대강 절충을 하게 마련이다.

(작품해설)
계속 꾹꾹 억누르지 않더라도 이미 너무도 잘 조련되어서 슬그머니 머리만 쳐들 뿐, 뭔가 한 소리 듣기 전에 그런 일은 하지 말자고 자신을 설복시켜가며 결국 고개를 숙이지 않을까. 단순히 그만큼 막다른 궁지에는 몰리지 않았기 때문인가.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인가. 혹은 복수 따위 번거롭기만 하기 때문인가. 불끈하는 건 너무 모양 빠지는 일이기 때문인가.
이오아니스 멘자스(미국 버티컬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