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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tante Zen

[도서/리뷰] 악어 프로젝트 (Thomas Mathieu)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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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악어 프로젝트 (Thomas Mathieu)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

Zen.dlt 2018. 7. 31. 14:20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 으레 '유머도 모르나', '칭찬이었는데?', '여자가 피해의식이 있다', '남자들을 다 매도하지 마라' 하는 식으로 쉬쉬하면서 넘어가다보니 여성이 공공장소/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종류의 성폭력에 의한 불쾌/자괴감은 가려져왔다. 그 결과 여성들은 사회에서 안전을 느끼지 못해-심지어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하여-집 안에 홀로 고립되어 버린다. 

토마 마티외는 이러한 상황을 전파하기 위해 '악어 프로젝트'라는 그림책을 쓴다. 저자 본인이 남자이면서,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담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한 바 이러한 '현실'과 '사회상'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여성은 인간형태로 그리고 남성은 '악어'로 그렸다는 데에 있다. 여기엔 저자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데(가히 '프로젝트'라고 불릴만하다) 바로 책을 독자들의 공감능력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맞출 수 있게 의도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만일 남성이 인간형태로 그려져 있다면 남성 독자는 자연스럽게 남성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게 되지만, 이를 '악어'로 만듦으로써 보다 이야기의 '화자'인 여성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오는 '부작용'도 저자는 수긍한다. 남성을 모두 '악어'로 그림으로써 '모든 남성들이 성폭력을 수시로 행사한다' 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남자만 알지 못하는 그 '일상적인 폭력'에 대해 읽다보면 우리는 우리 안의 비겁함을 마주해야 한다 (그렇다, 안나 가발다의 저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의 등장인물이 말했듯이 누구나 자기 안에 비겁함을 숨기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하고 저항하는 마음과 '나도 이런 때가 있었나' 하고 돌아보는 마음 사이의 저울질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역시 남성의 공감능력이 여성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남성은 소년시절부터 강인하고 남성적인 모습을 가지는 것을 미덕으로 성장하다보니 누군가에게 공감할 기회를 상당히 박탈당하며 사회에서도 남성에게 공감 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하지 않는다(여기서도 심리학자 베처와 폴락이 주장한 '유년기에 엄마와 떨어져야 했던 기억에 대한 외상'이 사회학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저자가 말한 대로 온갖 사례들 속에서 '성별을 토대로 한 무차별적 폭언과 폭력'이 행해지고 있단 것이었다. 내 주변의 여성들이 자주 '만만한 게 여자지' 하고 비난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다. 왜 많은 사례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먼저 가해놓고 저항하는 피해자 여성에게, 마치 피해자가 남성이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법한 (또한 피해자가 남성이었다면 성폭력을 가하지조차 않았을 수도 있으나)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왜 내재된 폭력성은 반대의 성에만 분출되어 버리는 것인가. 이는 여성이 가진 신체적/사회적 약점을 겨냥해 본인의 폭력성을 무제한적으로 배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젠더 전쟁이 유난히도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나라다. 지겨울 정도로 듣는 말이 소통과 공감 화해의 장 어쩌구 저쩌구들이다. 그래 좋다 이거야. 그러기 이전에 우리는 '상황'을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키워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여성 피해자들의 입장에 효과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악어 프로젝트'는 그 의미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성폭력' 사례들과 '대처 방안'을 보면 앞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움직여 나가야할지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저항'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해내지 못해서 오는 자책감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여성들을 계속 해서 비난하는 목소리 멈춰야 한다. 그럼에도 개선을 위해 여성들은 특정 상황에서 머저리 같이 웃거나, 기분 좋아하거나,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부당한 행위들이 사회적으로 지속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무엇이 잘못인지 인지하고, 왜 내가 기분이 나쁜지 이해하며, 왜 그것이 문제이고 잘못인지 가해자에게 인지시켜줄 필요성에 대해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도 이를 옹호해주어야 더 많은 여성들이 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