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도서/리뷰] <4월이 되면 그녀는> - 가와무라 겐키 본문
줄거리 소개는 생략.
"나는 사랑했을 때 비로소 사랑받았다. "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사람은 한없이 다정하고 매력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이죠. 손에 넣은 후에는 표면적이고 무책임한 다정함으로 변해버려요. 자신의 다정한 행동이나 이성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소망을 진정한 사랑과 혼동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이런 저런 넋두리를 내두른다.
당연히 사랑을 하는 과정에 편안함은 생기고 무책임한 다정함이 생긴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모두 알지 못하는채로 지금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도 안 나올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 후지의 처제가 질문을 던진다.
결혼은 왜 하는 걸까요? 후지가 대답한다. "딱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무미 건조한 마음이 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누구나 하루가 후지를 사랑했었던 때처럼 복잡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했을 때가 있었을 거고 그때를 그리워할 거다. 그러나 삶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그렇게 순수했던 사랑 조차도 끝이 난다고 약간의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해줄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도 그렇게 할 용기를 잃어버리고마는지 모른다.
여기에 대한 반문으로서 다음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살아있다는 실감은 죽음에 가까워짐으로써 선명해진다."
마치 서로가 불타오르는 관계의 초기가 아니고서야, '진짜 사랑'을 통한 삶의 인식이 가능하지 않다는 듯한 주인공의 해석은. 마치 진정한 사랑이 판타지 속의 것이며, 인생에서 찾기란 극히 드문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되었든 그런 무미건조한 사랑, 혹은 '이게 사랑인가', '사랑이 아닐 이유가 뭔가' 하는 관계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작가는 '열정과 순수를 되찾자'고 말하고 싶어한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스스로 회복해내는 것이다.
처제가 "결혼을 왜 하는 것일까요?" 라고 물었을 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고 회의적으로 대답했던 그. 그 소극적이던 그에게 곧 아내가 될 여자와 동거하면서 누렸던 생활은 단지 열정을 잃은 사랑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어렸던 시절의 순수하고 열정 넘치며 '왜 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조차 하지 않아도 되어 겁없이 사랑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후지의 인식이 다음과 같이 변한 것을 보자.
"야요이와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거실에서. 그녀는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설거지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냐고 인사한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일을 하다 문득문득 그녀를 떠올린다. 문을 열고 다녀왔다고 말한다. 어서 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의 끝. 잠들기 전에 잘 자라고 말하고, 같이 침대에서 잠이 든다. 만연히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사랑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그에게 이런 소소한 것은 열정 소실에 따른 '안정의 추구'가 아니다.
저자가 말했다.
인생에서 컨트롤 가능하지 않은 세 가지가 돈, 사랑, 죽임이라고.
그 중 그나마 컨트롤이 가능한 것이 사랑이 아니겠냐고.
그건 내면의 열정 회복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다.
-인용-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를 사랑 할 수 있을까. (중략) 그때의 내게는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죠. 당신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이 분명 잘 풀릴 거라고 믿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내 안에서는 그 4월이 아직도 어렴풋한 윤곽을 유지하며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어렴풋하게,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인간만이 누군가를 생각하는 동물이니까 재밌는 거야. 타인의 일로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있지. 그런데 최근에는 인간이 개나 고양이 쪽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도 들긴 해."」
「천성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 일시적으로나마 타인을 사랑하려고 애썼던 데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두려웠다. 어느새 자기 자신도 남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없었다. 또렷한 목적의식도 없이 아버지와 같은 의학부에 들어갔다. 동조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자기 감정을 전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나 역시 타인을 사랑할 수 없게 될까. 머지않아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조차 품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올까.」
「사랑은 감기와 비슷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느새 몸속으로 침투하고, 알아 챘을 때는 이미 열이 난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은 사라져간다. 고열이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날이 온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이 한순간이란 걸 지금은 알아요. 그때의 난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었어요. 너무나 어리고 무방비했죠. 그렇지만 그 무렵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몇 배는 힘차게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싶다.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받는다. 그걸 절실히 확인하고 싶었죠. 그 무렵의 철렬한 감정에 난 지금도 여전히 압도되어 있는 기분이 드네요. 후지와의 이별은 갑작스러웠죠. 구 년 전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부터 나는 줄곧 생각했어요. 우리는 왜 헤어져버렸을까. (중략) 좋아한다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강렬한 감정을 품었죠.」
「4월에 찾아온 그녀를 나는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차츰 멀어지고, 마침내 떠나간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다 포기해버리면, 시간이 날 맞춰주게 돼.」
「내가 후지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아닌지, 이따금 견딜 수 없을만큼 불안해진다고.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없어. 길바닥에 뒹구는 돌도 밤하늘에 빛나는 별도 마찬가지야. 」
「"그 한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는 건 환상이에요. 그런데도 남자와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동반자로 서로를 사랑하는 게 전제가 되는 건 이상하죠. 누구랑 연애를 하든 다다르는 종착지는 똑같아요. 그러니 결혼 후의 섹스리스도 당연하단 생각이 드네요."」
「"같이 사는 여자가 날 계속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죠?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야 그렇지만, 어느 정도 연령이 되면 결혼하고, 그 후에는 조강지처만 사랑하며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잖아."」
「"하지만 요즘 남자들은 그런 규칙에 어떤 의미에서든 얽매이질 않아요."
"하긴, 그래. 그러니 결혼할 이유가 정말 희박하지. 특히 남자에게는."
"그런데도 후지 씨는 결혼한다. 모순이군요."
"어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지"」
「"지금 (야요이) 언니 모습에서는 상상도 안 되겠지만, 남자친구가 생기면 늘 지나치게 진지해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매번 차였죠.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그런 진지한 성격을 전부 떨쳐버리고, 마치 전혀 안 그랬던 사람처럼 살지만."」
「"재미없는 남자였어. 못생긴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수수하고, 말수도 적었고. 그런데도 언니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고, 데이트 때마다 이 옷은 어떠냐, 머리 모양은 괜찮냐 귀찮게 물어댔죠. 옷 취향이나 듣는 음악이 점점 변해갔어요. 난 상대한테 맞춰서 그렇게 변하는 게 정말 싫었어. 언니는 미인이고 머리도 좋았는데, 그런 남자 때문에 변해가는 게 짜증났거든."」
「"그런데 다음 일요일에 남자친구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나 뭐라나, 어쨌든 갑자기 차여버렸죠. 그때부터 언니는 집에서 내내 울기만 했고. 빵이 맛이 없어서 그랬나, 내가 너무 진지해서 그랬나, 귀가 따갑도록 그런 말만 되풀이하면서."」
「"언니는 남자친구한테 차인 후에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공부에만 매달렸어요. 재수해서 수의학과에 들어갔죠.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그 사람을 줄곧 좋아했다니까."」
「"난 그런 언니를 보면서 늘 생각했죠. 왜 원하는 걸 갖고 싶어하면 안되는 걸까? 왜 진지한 마음을 상대에게 들키면 안 되는 걸까? 자기감정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전하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일까? 그렇지만 그건 상대를 아끼는 감정이 자신의 진지함을 추하게 여기는 감정에 졌을 뿐이야."」
「"난 서로를 아는 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 알지 못해도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알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는 그게 사랑이지 않을까."」
「왜 타인을 사랑할까. 왜 그 감정이 사라져가는 걸 막을 수 없는 걸까. 모든 현인이 도전해온 미해결된 난제. 언젠가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그에 대한 해답을 내주는 날이 올까.」
「나는 후지를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늘 불안했죠. 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까지 나를 좋아해줄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지금 여기로 밀려드는 파도 같은 그 감정은 입에 담는 순간부터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상대의 반응에 마음이 흔들린다. 슬픈 결말을 피하고 싶기에 마음은 너무 혼란스럽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랑을 한다. 왜 그럴까. 그날 오시마 선배가 말했어요. 까맣게 잊었던 말이 그 순간 갑자기 또렷하게 되살아난 거예요.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오시마 선배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어요. 대답을 내지 못한 채로 계속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신기하죠. 연애란 건 기본적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오게 마련인데."
"정말 복잡하고 까다로운 본능이야. 나도 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헤어지지. 또다시 사귀다 헤어지고. 슬픈 결말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똑같이 반복해. 그런 면에서 학습능력이 없는 건 여기 있는 동물들보다 못할 거야."
"그래도 야요이씨는 결혼하네요?"
"그러네. 결혼으로 그 반복을 끝내려는지도 몰라."」
「사랑을 끝내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손에 넣지 않는 것이다. 절대로 가지 것이 되지 않는 것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야요이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절망도, 그녀를 절실히 원하는 감정도, 마음속을 구석구석 다 둘러봐도 찾을 길이 없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사람은 한없이 다정하고 매력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이죠. 손에 넣은 후에는 표면적이고 무책임한 다정함으로 변해버려요."
"게다가 상대의 감정에 조금이라도 결여된 면이 있으면 애정이 부족한 증거라고 믿어버리죠.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다정한 행동이나 이성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소망을 진정한 사랑과 혼동하는 거예요."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게 아닐 테니까."
"진정한 사랑이라면 분명 좀 더 볼품없고 서툴게 표현될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남성이 표면적으로 사랑하려 드니까 그녀는 아이를 운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면, 어떤 감정을 그렇게 불러야 할까. 각각의 사랑의 다양성. 그 잔혹성에 놀라 압도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사랑을 태만히 했어요. 귀찮아했죠. 사사로운 감정을 쌓아가고, 서로에게 맞춰가는 노력을 게을리 했어요. 이대로 우리가 함께할 수는 없어요. 나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어요. 설령 그것이 파편일지라도. -사카모토 야요이」
「"살아있다는 실감은 죽음에 가까워짐으로써 선명해진다. 이 절대적인 모순이 일상 속에서 형태를 갖춘 것이 사랑의 정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연애 감정 속에서 한순간이나마 지금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으음, 후지 씨, 왜 다들 결혼하는 걸까요?"
"글쎄, 왜 그럴까. 하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말로 결혼하고 싶은가? 남의 일처럼 그런 말을 하면서 후지시로는 자문해봤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질문처럼 여겨졌다. 그 답은 분명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그래요. 사람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고독해진다고.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9월이면 나는 잊지 못할 거예요. 갓 싹텄던 새로운 사랑도 머지않아 변해버린다는 것을.」
「슬픈 감정과 행복한 감정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해요.」
「모두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갔죠.」
「나는 나를 만나고 싶었던 거예요. 당신을 좋아했던 무렵의 나를.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 무렵의 나를 만나고 싶어서 편지를 썼던 거예요.
나는 사랑했을 때 비로소 사랑받았다. 그것은 흡사 일식 같았어요.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똑같이 겹쳐진 건 지극히 짧은 한순간의 찰나. 거역할 수 없이 오늘의 사랑에서 내일의 사랑으로 변해가죠. 그렇지만 그 한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던 두 사람만이 변해가는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난 생각해요.」
「하루의 솔직한 심정이 그 마지막 순간의 마음이 후지시로와 야요이 사이에서 상실된 감정이 어떤 것인가를 또렷하게 드러내버렸다.」
「그렇게까지 해서 전하고 싶은 말이 내게는 있을까. 후지시로는 생각했다. 하루에게 어떤 말로 답하면 좋을까. 내가 사랑하면 틀림없이 상대의 마음에도 사랑이 싹틀 거라고 믿고 뛰어든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사랑이라는 말에 적합한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아 있는 한, 사랑은 떠나간다. 피할 수 없이 그 순간은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 사랑의 순간이 지금 살아 있는 생에 윤곽을 부여해준다. 서로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함께 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남아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 그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 모은다.」
「야요이와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거실에서. 그녀는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설거지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냐고 인사한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일을 하다 문득문득 그녀를 떠올린다. 문을 열고 다녀왔다고 말한다. 어서 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의 끝. 잠들기 전에 잘 자라고 말하고, 같이 침대에서 잠이 든다. 만연히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사랑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역자) 가와무리 겐키는 인생에서 도저히 컨트롤 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죽음과 돈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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