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책이 갖는 신비성과 그 책을 다루는 북 마스터인 책방 주인이란 얼마나 멋진지. 생각만 해도 책쟁이의 어떤 로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낭만을 꿈꾸고 레지 드 사 모레이라의 「책방 주인」을 폈다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을 읽고 말았다. 원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에서 자신이 읽어본 책만 파는 책방 주인」이란 긴 제목의 책인데. 이 제목에서 나는 손님의 사연에 맞춰 적절한 책을 추천하고 인생에서의 교훈을 일깨워주는 인자한 책방 주인이 나올 거라 기대했건만. 「책방 주인」에 나오는 중년의 책방 주인이야말로 오히려 따스한 치료가 필요한 인간이 아닌가 싶다. 자격지심이나 큰 상실감을 비뚤어진 우월 의식으로 포장하고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무례를 드러내는 옹졸한 인간상을 여러 작품에서 보게 된다. 등장..
숱한 호평을 자아내는 「13.67」 을 읽고나서 홍콩 작가 찬호께이의 이전 작품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읽었다. 이 제목도 특이한 소설은 제 2회 시마다 소지 추리상 수상작으로 시마다 소지가 21세기형 본격추리소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 작품이다. 쉬유이 형사는 한 부부가 집 안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장면을 꿈 속에 보고는 깨어난다. 그것은 그가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둥청 아파트 살인사건의 장면이다.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 경찰서에 출근해보니 아는 동료들은 모두 없어지고, 심지어 날짜는 둥청 아파트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6년이 지난 2009년이다. 그제서야 쉬유이는 자신이 6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기억 상실증에 걸렸단 사실을 깨닫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그 때 경찰서에 ..
화려한 네온 사인이 가득한 시내 거리. 다닥다닥 붙은 기이한 구조의 다세대 빌딩이 즐비한 뒷골목. 홍콩 특유의 도시 색깔을 영화나 관광책에서 볼 기회는 많았지만 문학 작품에서 보기란 드문 일이었다. 중문학이 그다지 많지 들어오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홍콩 작가 찬호 께이가 쓴 「13.67」 이란 형사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13.67」은 후기가 참 많이도 작성되어 있는데, 직접 읽어보니 '과연 그러하군' 하고 이해가 되었다. 「13.67」는 주인공인 형사 관전둬의 형사의 수사극을 역시간 순으로 쓴 소설이다. 관전둬는 영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보여주며 승진을 거듭한 천재 탐정으로, '천리안 관전둬'라고 불린다. 이야기는 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에는 7명의 작가가 모여 각각 하나의 에피소드를 엮은 책으로,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나도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각 에피소드는 미지의 사건을 쫓는 멀더와 스컬리의 모험담을 빠른 필체로 그려낸다. 시간 배경은 1994년, 2015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기존 드라마 시리즈에서 '부국장'으로 등장했던 스키너가 국장으로 승진하는 등 신선한 분위기도 풍긴다. 인상적인 건 모든 에피소드에서 멀더와 스컬리의 성격차가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단 점. 멀더는 외계인, 외계생물, 뱀파이어 등 판타지적인 것들에 대한 신념이 매우 굳건하여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갖고 사건을 추적한다. 반대로 스컬리는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성격으로, 매 사건을 마주..
통계분석에서 x, y 의 회귀 분석 시, z라는 제 3의 변수의 교호작용(Interaction) 유무를 검증하고자 할 때, 많은 저자들이 연속형 변수 z를 그룹형 변수로 바꾸는 방법을 시도 한다.나아가서 x와 z 모두 그룹화하여 n x n 테이블을 만들어 z 변수에 의한 interaction의 유무를 가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z 변수에 실제로는 교호작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호작용이 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spurious interaction). 또한 interaction term 의 partial regression coefficient 의 값이 0 이라고 하는 귀무가설이 참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설을 기각해버리는 제 1종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제 1종 오류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직업의 귀천이 강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일관성이 강조되어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 되고는 한다. 그렇다보니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보는 시선도 있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건전한 의미에서의 개인주의와 자아 실현이 지지를 받는 추세다. 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듯 남들과 다른 길을 직업으로 택한 사람들의 경험이 이야기 거리가 된다. 그런 이야기들은 현재 사회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명성, 부라는 가치에서 한참 동떨어진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감과 행복을 보여주며 진짜 자기의 즐거움을 따라 인생을 자주적으로 살아가야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런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