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홍콩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로서 일본인의 자금세탁을 도우며 살아가는 구도 아키오. 어는 날 수제자와 같은 마코토의 소개로 와카바야시 레이코라는 여성의 의뢰를 받게 된다. 여자의 의뢰는 5억 엔의 자금을 해외 계좌를 이용해 세탁하는 것. 아키오가 아는 선에서도 레이코의 의뢰는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아키오의 천재적인 수법으로 레이코는 목적을 달성하고 일본으로 떠난다. 이후 홍콩에 남아있는 아키오에게 구로키라는 야쿠자가 찾아와 레이코가 50억 엔을 들고 사라졌다고 하며 행방을 묻는다. 이제 아키오는 구로키에게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사라진 레이코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수수료 보다도 어쨌든 미인이니까 찾고 보는 듯한데). 아키오와 레이코의 만남, 그리고 구로키의 방해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그들을 몰..
일본에서 일어난 큰 "여자행원 공금횡령사건"의 배경에는 항상 남자가 있다고 한다. 이 속설의 배경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저자 가쿠다 미쓰요는 상상력을 발휘해 횡령 사건과 관련된 스토리를 짜고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을 창조해냈다. 또한 섬세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인물의 의식 흐름을 매우 부드럽게 진행시킴으로써,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낭비벽 또는 근검절약이라는 성향 때문에 다양한 모습으로 꼬여가기 시작한다. 교보문고에서는 이 책을 "80년대 말부터 일본 경기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이 소설은 큰 규모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 고령자들과 자식 세대에 벌어지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보단 남녀관계가 금전적..
새 직장의 멘토가 될 사람이 처음 내게 던져 족쇄가 되었던 말은 "당신이 우리 팀에 좋은 영향을 주리라 판단하였습니다." 였다. 이 마법같은 말 때문에 그녀와 내 관계가 본래 그래야 하는 '멘토-멘티'에서 '보스-직원'으로 단숨에 바뀌어 버린 기분이었다. 기대를 받으면 그에 응당한 역할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웃사이트》를 손에 쥐게 됐다. 나는 관리자로의 역할 전환이라는 과제에 당면해 있었다. 그건 이미 바로 이전의 경력이 끝을 내려고 하는 그 시점에서 내가 느끼던 '불균형'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과제였고 나는 그 문제의 원인조차 형식화할 줄 몰랐다. 《아웃사이트》를 읽고나서 나는 그것이 조직 자체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건 이 책이 충분히 논리적이고 ..
급변하는 정세나 문화에 발맞춰 다양한 장르와 소설가들이 출현했던 시대, 아쿠타가와는 시적 정신을 추구하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그 자신이 시대의 격변에 좌절하여 자살해버리고 고전 소설이 종료했음을 알리는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다. 아쿠타가와 상은 아쿠타가와의 실험적이고도 순수했던 정신을 모티브로 했는지, 문학성과 실험성이 높은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고 한다. 아쿠타가와의 말년작들은 난해하였지만, 다행히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들이 반드시 난해해야만 '실험성'을 인정받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마타요시의 작품 《불꽃HIBANA》는 서정적이고 담백하다. '실험성'을 찾는다면, 아마 개그콤비가 선보이는 '만자이'의 말장난을 글 속에 껴 넣은 것 정도일까. 실험성보다는 대중성이 훨씬 강한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이름도 왠지 공포스러운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단편 모음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을 읽었다. 이미 「남의 일」에서 한번 히라야마 스타일에 꽤 충격을 받았었는데, 훨씬 이 전에 출간된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도 과연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자가 나락으로 빠지고 지위와 목숨을 잃는 데는 예기치 못한 느닷없는 사건이 관여하는 법이다. 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약한 자가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안이함을 깨닫고 다시 절망하게 되기도 한다. 모두 '상실'과 연관되고, 이걸 그로테스크한 묘사와 이어주면 실감나는 '호러'가 된다. 「오메가의 성찬」, 「오퍼런트의 초상」, 「..
조이스 캐럴 오츠의 환상 호러 소설집 「악몽」. 도서관 신착 서양소설 코너에서 양장 옆 표지에 박힌 두 글자에 자동으로 끌렸다. 악몽. 오츠. 이 오츠에서 "혹 오츠이치가 이 오츠에서 유래한 건가? 그렇다면 이 조이스 캐럴이란 사람이 오츠이치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인 건가?" 하고 상상했지만. 오츠이치 필명에는 다른 유래가 있었다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악몽」에는 7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오츠가 작품에서 그리고자 하는 인간 공포 심리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더도 덜도 말고 역자가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도움이 됐다. 역자는 오츠를 "악마만이 꿰뚫어 볼 것 같은 인간의 심연을 정교하고도 유려하게 재구성하는 독보적인 작가"라고 말한다. 그 말 그대로 7개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공포와 불안의 원인이 되는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