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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tante Zen

섬세한 작가 아사다 지로의 사고루기담: 흑거미 클럽 스타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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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작가 아사다 지로의 사고루기담: 흑거미 클럽 스타일

Zen.dlt 2016. 4. 1. 13:58


모래 위에 지은 누각 '사고루'라는 이름의 건물. 그 건물 꼭대기 층에서 다양한 분야의 거물들이 초대받아 '기담'을 주고받는 모임을 가진다. 거짓도 미화도 있어선 안되고, 들은 이야기는 어디에도 발설해서는 안된다. 그 날밤, 다섯 가지의 기담이 사고루 꼭대기 층에서 이야기된다.


"신기하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보면 모두 진실한데도, 그 런 진실된 인간들이 모이면 어째서 이런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지.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신이 만든 가장 열등한 생물이란 느낌도 드오.(본문 중)"


사고루기담의 이야기는 일본 버라이어티에서도 좋아하는 소재인 귀신이 나오는 부류의 그러한 기담은 아니다. 사람의 삶 속에서 조우하게 되는 기이한 일들을 이야기로 하고 있는데, 그 근간이 인간의 탐욕, 갈망, 열정이라고 하는 점이 아사다 지로의 작품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총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대장장이』는 현대의 도검 명인이 만든 작품에 최고의 도검 감정 가문도 감쪽같이 속아버려 진귀한 문화재로 감정해버린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실전화』는 헤어진 어릴적 친구를 계속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을 오싹하게 표현한 이야기로, 스토킹이 인생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엑스트라 신베에』는 신센구미 이케다야 여관 습격사건 장면 촬영장에 나타난 신베레라는 이름의 엑스트라가 액션신 촬영이 끝나고 홀연히 유령처럼 사라진 이야기이다. 『백 년의 정원』은 가루이자와 호화 별장의 정원을 가꾸는 데 일생을 바쳐 마치 정원 속 식물이 된 듯한 여자가 끝내는 살인까지 저질렀음을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비 오는 날 밤의 자객』은 야쿠자 총장의 고백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이 살인 당시의 긴장감 넘치는 체험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전혀 연관성이 없고 소재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는 것이 묘한 책이다. 햐쿠모노가타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것은 이런 구성때문인가보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대변되는 인간의 본능적 심리가 원천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화자들은 속에 담아두었던, 누군가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었지만 늘 그들에게 어떠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도록 뿌리내려 있는 '독'을 사고루의 모임에서 뱉어낸다. 자신의 짐은 덜지만, 다른 사람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또 독을 삼키고만 꼴이 된다. 그런 식으로 사고루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사고루라는 장소 자체가 환상적인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고루가 특정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고급 사교클럽이라는 점 때문이라 하겠다.


매력적인 구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재미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게 흡입력 있게 독자를 빨아들이는 책은 아니다. 잔잔한 느낌은 있지만, 그렇다고 어떤 서정성이 짙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나마 서정성을 살릴 수 있었을 『백 년의 정원』같은 작품도 결국 분량이 제대로 할당되지 않은 탓인지, 분위기가 이도저도 아닌 식으로 전개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다섯 가지 이야기가 각기 다른 소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 오히려 명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조를 갖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이것을 읽기 전에 「칼에 지다」를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기대하고 기대했던 「칼에 지다」를 재미없게 읽어버리게 되지않을까 싶어 노파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