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서평] 미쓰다 신조 호러소설 - 괴담의 집 (2015) 본문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집>이란 신간이 출간된 것을 보고 뒤늦게 어찌나 기뻐했는지. 미쓰다 신조 작품이 '미즈치처럼 가라 앉는 것' 이후로 활발히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는 것이 참으로 기쁘다. 출간되자 마자 바로 본 것은 아니지만, 꽤나 빠른 시기 안에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젠 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거 같은데."
단편 같은 모음집 아닌 모음집인 너(?)
<괴담의 집>엔 다섯가지 괴담이 실려있다. 시대도 지역도 다른 곳에서 다섯 개의 가구가 겪은 몹시 공포스러운 사건에 대한 기록들이다. '공포의 저택'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소설 속에선 주인공 미쓰다 신조가 다섯 이야기 중 네가지 이야기들을 가져온 편집자 미마사카 슈조라는 청년과 괴이의 정체를 추측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5개의 단편이 모인 모음집이면서도 하나의 단편집이라는 것. 이 다섯 가지 이야기엔 어딘가 공통점이 있다 라는 느낌을 갖고 두 사람이 추측해 나가는 걸 이해하기 위해선 다섯 가지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의 일기-저편에서 온다」
신축 단독주택으로 한 가족이 이사를 온다. 딸 아이의 방에서 이웃집의 3살배기 소년이 실종, 또는 유괴된다. 딸아이는 계속 어머니에게 '키요'라고 하는 가상의 친구가 벽지 속 울타리 저쪽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소년의 이야기-이차원 저택」
소년이 사는 동네에는 '신케이 저택'이라는 정체불명의 저택이 있다. '와레온나'라는 괴물에게 쫓기던 소년이 신케이 저택에 숨어들다가 큰일을 당한다.
「학생의 체험-유령 하이츠」
대학에 입학하면서 출경(出京)하게 된 학생은 파격적으로 싼 가격의 한 연립 주택에 이사하게 된다. 지붕 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가 하면, 옆집 여자 방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밤 시간에 들려온다. 하루는 학생이 주택 지붕위에서 비 오는 날 춤을 추는 괴상한 노파를 발견한다.
「셋째 딸의 원고-미츠코의 집을 방문하고서」
중학생 소녀의 어머니, 아버지, 두 언니는 신흥 종교에 빠져서 큰 이모 댁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어머니는 신흥종교의 교주가 된 듯 하다. 걱정되어 결국 가족들이 있는 '미츠코의 집'이라는 곳에 방문한 중학생 소녀는 그곳에서 한 밤 중 정체모를 '그것'과 마주하게 된다.
「노인의 기록-어느 쿠루이메에 대하여」
어느 마을의 대 지주 집안에서 이마가 갈라진 소녀가 태어났다. 이 소녀에게는 예언을 하는 힘이 있었는데, 점차 사람들은 그 예언이 '저주'나 '재앙을 내리는 요력'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소녀는 이윽고 마을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소녀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대지주는 소녀를 집 안의 감옥에 감금해 버린다.
괴담 좋아한다면 분명히 쌍수 들고 환영할 듯
아아.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괴담에 질린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은 순전히 미쓰다 식의 '전개방식'을 조금은 식상하게 느끼기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미쓰다 신조 첫 호러 단편집 <노조키메>와 흡사한 전개방식에 "아 빨리 결말을 알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괴담의 집>은 또 하나의 괴담 단편본이 나왔구나 하는 점에서는 기뻐해야할 것 같다. 괴담 좋아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수집'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 비슷한 이야기들은 '식상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묘한 현상의 실재를 증명하는 다양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걸 떠나서도 압도적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 묘사는 읽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설마 했는데 이 소설도 후반부에 가서는 메타 소설 방식을 취하며 독자를 놀라게 한다. <괴담의 집>을 읽는 동안은 집에서 나는 자잘한 잡소리 마저도 공포스럽게 느껴질 거다.
풀리지 않는 묘한 점들
지금껏 미쓰다 신조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어온 나로서는 이번 <괴담의 집>을 읽으면서 혼자 여러방면으로 상상해본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미쓰다 신조 호러 소설 속에선 '반전'이 등장해왔다. <괴담의 집>으로 말할 거 같으면 책 속의 현실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미쓰다 신조 본인과 미마사카 슈조 단 둘 뿐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의 '작가 시리즈' 중 <작자미상>에서의 미쓰다와 그의 친구 아스카 신이치로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지극히 한정된 등장인물들이 빚어내는 반전이라는 전개가 이 <괴담의 집>에서도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특히 미쓰다 본인도 이 미마사카라는 인물상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어떤 이미지상이 의도적으로 고착시키려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아무튼 이 미마사카라는 인물도 어딘가 평범해보이지 않는다).
미마사카의 묘한 태도도 결국 풀리지 않는다. 미마사카는 미쓰다에게 소설을 소개하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그 거짓말을 한 의도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미쓰다는 "너 거짓말 했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고, 미마사카도 어떻게 아셨어요 하는 느낌으로 그냥 끝을 맺는다. 대체 왜!?
또 하나는 <괴담의 집> 안에서 미쓰다 신조의 말투가 이상하다. 아무리 20세 중후반 정도의 청년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다곤 해도 미쓰다의 말투는 너무나도 노인스러운 말투이다. 미쓰다 본인의 출생년도(1973년)을 고려하면 어딘가 어색하다. 번역에서의 문제인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특히나 이 점이 묘하게 느껴지는 건 전작 <백사당+사관장> 시리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미쓰다 신조의 늙은이 같은 말투가 눈에 띄는지는 <사관장>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미쓰다가 의도하고 늙은이 같은 말을 소설 속에서 사용한 거라면 상당히 철저하게 세부 설정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미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실화인지 알 수 없는 '미쓰다 월드'이다보니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과장된 지나친 해석을 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겠지. 소설 속 미마사카도 그랬으니까.
시작부터가 난센스한 거 아닌가
등장인물 미마사카가 미쓰다에게 말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왜인지 비슷하게 느껴지는 일은 좀처럼 드문 일이지 않냐고.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일 뿐이라면' 어디까지나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내 견해와 이 미마사카의 주장이 서로 일치하질 않는다. 도시전설이니 괴담이니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모티브나 소재, 진행 방법 등이 비슷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미쓰다 신조는 구비전승, 민속 신앙 등을 엮어서 '도조 겐야 시리즈'를 냈는데, 그 안의 이야기나 소재들이 비슷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쿠치사케온나, 와레온나, 노조키메 등은 자세한 특징을 따지지 않고 들어가면 왠지 비슷해보이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왜인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게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 미마사카의 말을 다른 식으로 해석해야 했던 게 아니라면, 일단 미마사카의 접근법은 어딘지 어색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에 열기를 보이는 것은 그 '이상하게 비슷하다'라는 점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를 읽고나니 왠지 섬뜩하고, 기시감이 든다'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싶다. 그게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이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섬뜩하긴 하다. (유치한 연출은 둘째치고.)
어딘가 뒷맛이 씁쓸하다
이야기 자체가 풍기는 괴기한 분위기 때문에 뒷맛이 씁쓸한 게 아니다. 이 어중간한 데서 멈춰버린 이야기가 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독자들이 꽤나 낮은 점수를 주며 혹평한 것도,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해가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신나게 괴담을 떠들기 시작했는데 스스로 중요한 부분에서 뭔갈 감추며 더이상의 진행을 거부한 느낌이랄까. 김이 팍 샌다는 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저자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의 방대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침식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한껏 보여주다가 "더이상은 저도 불길해서 더이상 말을 못하겠네요." 하고 돌아선 느낌.
이런 느낌은 오노 후유미의 <잔예>하고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한 집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괴기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추적한 경과를 담은 <잔예>라는 소설을 결말 짓는 방법도 <괴담의 집>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미리니름이 될지 몰라 적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잔예>에서의 오노 후유미의 태도는 능동적인 함구가 아니라 수동적인 함구라는 게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집>과 다른 점일 것이다. 똑같이 김 빠지는 상황이지만 풍겨지는 이미지가 다르니, 독자가 수용하는 때의 감정도 크게 달라진다.
거부권이 없으니까
교고쿠 나츠히코 소설에서 주인공이 말했다. 주술도 그것이 통용되는 시대와 장소에서 효력이 있는 거라고. 또한 '믿는 사람'에게는 진실이 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다. <괴담의 집>에서 등장한 괴이의 정체에는 거부권이 없다. 시공간이 초월해서 등장하고, 믿든 믿지 않든 효력을 발휘한다. <괴이의 집>에서 이상한 신흥 종교를 믿지 않던 소녀에게 일어난 괴이한 일을 적은 「셋째 딸의 기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교주가 "믿지 않는 자에게 불행이 있다"고 하고 있으니). 그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일본에 살고 있는 독자들은 훨씬 더 체감하는 공포가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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