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특별요리 - 미스테리 거장 스탠리 엘린 본문
아야츠지 유키토의 「안구기담」에 <특별요리>라는 단편이 실려있다. 이제껏 본적 없는 독특한 설정의 소설이었는데, 원래는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라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탠리 엘린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21세기 일본 소설이, 이제 20세기 서양 미스테리 세계로 빠지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
「특별요리」는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를 비롯한 기타 단편을 엮은 모음집이다. 각 단편들 모두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고 박력있는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상상력 넘치는 상황 설정 또한 눈부시다. 등장인물들은 욕망, 질투 때문에 도덕성도 져버리는데 기대와 신념이 무너지고 결국은 '완벽한 딜레마'에 빠져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암시적인 묘사 만으로도 후일에 대한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어진다. 넌센스와 블랙 조크, 철학적인 질문들이 어우러진 밀도 있는 미스테리 작품들을 읽으며 고개를 가로 저으며 손뼉 치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현대 작품 속에서 스탠리 엘린 식 재치의 흔적을 찾는 것이 즐거웠다. 히가시노 케이고의 「흑소 소설」도 이제 보니 스탠리의 「특별요리」와 유사한 구도를 갖고 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특별요리>는 스탠리의 「특별요리」를 오마주하면서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모를 한 층 더 끓어올려 묘사하였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과 스탠리 「특별요리」의 차이점은 문장력에 있지 않나 싶다. 스탠리의 문장은 다양한 수식어를 쓰고 있고, 감정에 대한 묘사도 기발한 표현이 많다. 문학성까지 뒷받침되니 매료될 수밖에.
일본 미스테리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좀 더 서양 미스테리를 읽어라." 라고 했다는데, 현대의 서양 소설에선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을 찾지 못했었건만. 스탠리 엘린을 읽은 이제서야 그 말에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손발의 몫: 의문의 전화를 받고 고용된 크랩트리는 좁디 좁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의 업무는 잡지를 뒤져 특정인물이나 회사의 동향을 빠짐없이 옮겨적어 보고하는 것. 고용주가 누구인지, 이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크랩트리는 점차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유쾌하고 치밀하면서 강압적인 악당 캐릭터, 꼭 영화 속 인물 같다.
◎ 성탄 전야의 죽음: 변호사는 실리아와 찰리 남매가 사는 집을 찾는다. 찰리는 사랑하는 아내를 계단에서 밀어 죽인 건 누나 실리아라고 의심하고 있다. 동생 찰리에 대한 실리아의 병적인 애정으로 인해 찰리와 실리아는 계속해서 충돌한다. 찰리는 변호사에게 누나를 재판대에 올릴 방법이 있다고 호소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이 두 남매의 태도와 성격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
◎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애플비 씨는 자신의 골동품 컬렉션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골동품을 지킬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여성과 결혼, 이혼을 반복하며 컬렉션을 확장해 가는 그. 전혀 자기 스타일이 아닌 여성 마사 스터지스에 재력에 이끌려 결혼을 하게 되는 애플비. 하지만 여자는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상당히 의외였던 결말.
◎ 체스의 고수: 잔소리꾼 아내가 뭐라고 하든 조지는 체스 취미에 빠져 살고 싶다. 아내는 체스 친구를 초대하는 것도 못하게 하기 때문에, 결국 조지는 상상 속의 상대 '화이트'와 체스 대결을 한다. 이 '화이트'는 아내에게 뼈도 못 추리는 조지를 경멸에 차서 부추기는데... 그렇게 악마는 탄생하였다.
◎ 최상의 것: 상류층 여성 앤에게 반한 아서. 그녀에게 걸맞는 남자가 되고 싶어 열망한다. 우연히 만난 찰리 프린스라는 부유층 남자와 같이 하숙을 하면서 그에게 귀족의 태도를 익히기 시작한 아서. 이윽고 앤과 잘 될 수 있단 희망을 갖게 되었건만, 충격적인 사실이 아서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를 연상시키는 장면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었다.
◎ 배반자들: 벽을 통해 옆집 동태를 살피다가 부부싸움으로 부인이 살해된 것을 알게 된 로버트. 손수 탐정이 되어 옆집 남편을 고발할 수 있는 증거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하고, 증거를 모아 경찰서로 향한다. 탐정질의 동기가 '옆집 여자에 대한 흠모'라는 것이 넌센스.
◎ 하우스 파티: 마일스라는 남자는 인기리에 상영 중인 무대극에서 빠지고 싶다고 얘기해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는다. 대체 무슨 이야기였는지 거의 기억이 안 난다... 주인공 만큼이나 정신없는 화면.
◎ 브로커 특급: 아내의 내연 사실을 알고, 내연남을 차로 치어 죽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코닐리어스. 차로 사람을 친 '운전자'가 오히려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묘사하는 게 인상적이다.
◎ 결단의 순간: 결단력과 자신감이 충만한 남자 휴. 그리고 숲 건너편에 새로 이사온 전직 유명 마술사 레이먼드. 이제껏 열등감이라곤 겪어 본 적 없는 휴에게 달관한 듯한 레이먼드는 불쾌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휴는 이성과 지식에 대한 확신이 있는데, 레이먼드는 사람의 심리적 약점에 파고드는 일은 쉽다고 자극한다. 휴는 손님들이 있는 파티에서 레이먼드에게 목숨을 건 탈출 마술을 보여달라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의 깊이를 가늠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될 때, 그는 스스로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문장 하나가 스탠리 소설의 멋진 점을 피력한다. 스탠리는 다양한 딜레마를 제공하며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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