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도서/리뷰] 엄마됨을 후회함 - 가부장적 사회 속 후회하는 엄마들 본문
저자 오나 도나스는 이스라엘 사회학자다.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이스라엘 사회 속 '엄마들' 중 연구에 적합한 여성들을 일부 선별하여 인터뷰를 함으로써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는 원인과 시사하는 바를 연구한다. 연구 결과는 《엄마됨을 후회함》이라는 책이 되어 독일에서 출간되었고 사회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알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닮은 듯 보여진다. 우리 사회에도 《엄마됨을 후회함》을 분명 어떤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책은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어떻게 엄마가 되었나' 에서는 여성들이 엄마가 되는 과정이 강제적인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임을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보여준다. 2장 '엄마라는 이유만으로'에서는 엄마들에게 당연한 것 처럼 요구되는 희생 정신과 무조건적인 사랑의 이미지로 인해 정작 엄마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3장 '결코 엄마가 되지 말아야 한다'에서는 인터뷰 대상 여성들이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는 아이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 때문에 자기 혼란을 겪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런 생각이 그녀들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사회적(혹은 본능적)으로 느껴져야 할 모성애가 아닌 감정들이 그녀들을 지배하면서 그녀들 이율배반적인 상태에 빠져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육아의 스트레스만이 아니라 심지어 '아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위험한 생각이었고, 그녀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더욱 궁지에 몰리게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실제로 '거기'에 있고 '발생'하고 있다.
4장 '용납되지 않는 감정으로 살아가기' 에서는 임신이 왜 이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다시 한 번 둘러보게 한다. 5장 '엄마, 당신은 누구인가'에서는 엄마됨을 후회하는 감정이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감정'과 같은 것은 아님을 명시한다. 엄마들은 육아 스트레스와 자녀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고, 조심스럽게 자녀들에게 "미래에 아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신중해질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고 싶다고 한다. 6장 '누구의 엄마도 아닌'에서는 이런 여성들이 '엄마됨을 후회'하는 이유를 그녀들이 처한 특성에서 찾아본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은 빈곤, 여성에게만 집중된 가사 노동,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조금의 '자유'라도 주어질 수 있다면 여성들의 후회는 보다 약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6장에서 언급되는 것 처럼 현대 사회에서는 일을 하는 엄마들이 '슈퍼 맘' 이 될 것을 강요한다. (책 내용으로만 보면) 남편 혹은 아버지의 역할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가사와 육아 임무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보여진다. '슈퍼 맘' 만이 아니라 '슈퍼 대디'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거나 혹은 '슈퍼 패런츠'라는 개념 자체가 없이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양 부모에게 분담되는 사회가 된다면 '엄마됨을 후회' 하는 여성들은 줄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후회라는 감정을 언급하는 것이 터부시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극성맞은 페미니스트들이나 정신이상자의 객기라고 인식되어버릴지 모른다.
현대 사회는 수 많은 가치관들이 시도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육아만이 아니라 직업 사회에서도 기술의 발전과 삶의 형태의 다양화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의견차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성들은 그 많은 가치관 속에서 가족을 이루고 엄마가 되는 것 또한 당연히 이루어내야 할 사회적 가치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육아는 단지 시도에서 끝내기에는 후에 따라오는 (강요되든 강요되지 않든) 책임감과 여파가 다른 것들에 비해 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후회를 불러일으키지 않나 싶다. 이 책에 묘사된 엄마들의 삶 속에서는 개인의 삶을 개척하고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이 모두 육아 때문에 포기되어야 하는 것 처럼 보여진다. 또한 이는 단지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지' 하는 문제로 끝이 나지 않는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자유 시간이 올 것 같지만 눈 감는 날 까지 편안해질 날이 없다. 그래서 오나의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의 의도는 '내 아이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를' 하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오나가 '후회하는 감정'을 가진 여성들을 선별하여 인터뷰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극단적인 의견들이 이 책에 담겨있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또한 오나의 연구는 인터뷰 내용과 기존 문헌 고찰을 엮어 만든 질적 연구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래서 오나의 연구 결과는 보다 보편적인 현상에 대해 연구해야 할 빌미를 제공한다. 오나의 시도는 선구적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보다 폭넓은 연구를 위해 동물사회학(행동학), 심리학 등의 연구결과가 모아져 더 흥미롭고 논할 거리가 되는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많은 문헌들 속에서 '가족 개념'이 해체된 사회를 보곤 한다. 그게 옳다 아니다를 떠나서 미래엔 그러한 시스템이 사회에 적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가치 충돌이 그런 미래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도 된다. 아주 먼 미래가 되면 오나 도나스의 책이 "지금의 생식 시스템을 지지해야 할 많은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한 선구적 연구 결과"라고 언급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 연구는 엄마가 되는 것이 아이를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엄마들은 대세의 흐름에 따라 별 생각 없이 임신했다고 한다. 엄마가 되려고는 했으나 아이를 원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여성도 있다. 또 어떤 엄마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를 원치 않았지만 외부나 내면화된 압박에 굴복해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 37 p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여성들은 엄마가 되는 길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인생과정 중 다음 단계'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생각이 그토록 강한 이유는 여성은 자연스레 엄마가 된다고 하는 생물학적 결정주의 문화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결정과 행동이 이성애관계 중심의 문화논리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42 p
"또 어떤 여성들은 현재와 미래의 고독이나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엄마의 삶을 택한다. 그리고 인생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중략) 엄마가 되는 것이 반드시 여성 본연의 소망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가능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46 p
"물론 아이들로 인한 엄마들의 감정은 한 가지가 아니다. 그것은 하루에도 여러 가지로 변할 수 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시간적, 공간적 상황, 아이들과의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데도 '좋은 엄마'로 인정받으려면 항상 똑같은 감정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좋은 엄마'라면 무조건, 무한정 사랑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비도독적 엄마'다). 게다가 출산 직후를 제외하고 몇 년 후에는 성모마리아처럼 우아해야 한다. 그리고 행복하고 풍요롭지 않아도 고난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64 p
"다른 여성들은 실망스런 경험에 더 이상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들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또 다른 출산에 의해서 간단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실망, 경험과 지식은 엄마가 되면 마침내 은총으로 증명되고 부정적인 경험은 언젠가 극복된다는 사회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다." - 200 p
"즉 아이들과 후회의 경험을 이야기할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 발전에 정성을 다하며 스스로에게 침묵하라고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질문과 엄마들의 다양한 대답은 여성들과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현실이 가능한 개선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233 p
"그 밖의 연구를 통해 엄마들 삶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의 중요성도 강조되었다. 더 이상 엄마들을 주변으로 몰아내지 않고 그들에 대한 신화적 미화를 없애고 엄마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 240 p
"하지만 집안일과 육아의 균등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해결을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함으로써 노후대책이 힘들어지는 위험을 감주한다. 어떤 여성들은 결국 집에만 있고 또 어떤 여성들은 아이 낳기를 완전히 포기한다. (중략) 수많은 연구들이 사회의 강요와 관계 없이 일종의 참된 엄마의 태도가 존재한다는 통념, 즉 사회가 부담을 주지 않아도 여성은 천성적으로 엄마라는 관념을 그대로 넘겨받는다." - 242 p
"후회의 원인이 빈곤 때문이거나 상류층 백인여성들에게만 해당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책의 인터뷰 내용들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엄마들이 느끼는 억압감은 오직 엄마로서의 삶에 관한 이데올로기와 사회관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연구에 참여한 여러 엄마들은 생활조건이 또 하나의 부담이긴 하지만 그것이 달라진다고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각자 걸림돌이 되는 조건으로 꼽은 것 중 특히 세 가지가 주요요인이었다. 바로 엄마로서의 삶과 직업 사이의 줄다리기,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생활, 배우자나 주변사람들에 의한 체계적 지원의 결여이다." - 246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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