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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뷰]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 내버려진 여자, 다시 신부가 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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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뷰]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 내버려진 여자, 다시 신부가 되다

Zen.dlt 2017. 4. 15. 02:25

이것은 내버려진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바랬던 여주인공 나나미의 일상이 곤두박질 친 것은 지극히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원래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부였습니다.(p 184)"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무심함때문에 상처받은 소녀시절을 보낸 나나미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도 못한 채였다. 23살, SNS 페이지에서 만난 데쓰야와 만나면서 느끼는 순진한 감정들을 SNS 에 익명 닉네임으로 올리던 평범한 여자였다. 결혼을 하기로 하면서 데쓰오에게는 부모의 이혼 사실을 숨겼고, 결혼식에는 가짜 하객을 고용한 것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SNS 게시글은 결혼식 날 들켜버렸고, 거짓말을 한 사실도 곧 발각이 되어 나나미는 이혼을 당한다.


나나미가 이혼을 당하는 과정은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나나미에게는 해명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나미가 알지 못할 뿐 끔찍한 배후가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나나미에게 하객을 알선하고 여러 일을 소개시켜 준 '아무로'라는 남자가 실은 나나미의 인생을 뒤에서 조작한 악당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계속 조장한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나미, 그렇게 순진해서 어쩌잔 말이야!' 하게 되도록. 


나나미가 도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고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성매매 만큼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이전에 봤던 여러 소설들이 동시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연약하고 순수한 여자들이 남자와 사회의 폭력에 의해 거리로 내몰리고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닳을 대로 닳아 "나도 그랬었지"하고 슬프게 내뱉는 장면은 이제 너무 흔하단 느낌이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이렇게 '내몰린 여성'들의 '교제'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 나나미가 남편에게 버려지는 부분은 소설에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나미는 AV 여배우인 마시로와 '하객알바'를 하다 친해지고, 이후 일상을 공유하면서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립반윙클이라는 건 마시로의 SNS 닉네임이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마시로와 나나미의 관계를 상징하는 제목이다. 소설은 성별을 초월한 사랑의 감정이 발생할 수 있게 한 두 여자의 '배경'에 대해 여러 감상을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결말은 상당히 이중적이다. 나나미가 마지막으로 '당신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라는 감정을 마시로에게 비치자, 실제로 마시로는 동반자살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경악할만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말기암에 걸린 마시로가 "혼자 죽긴 무서워, 같이 죽을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까 친구를 '고용'할 거야"라는 본심을 나나미에게 숨기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하는 나나미는 죽어버린 마시로를 여전히 애처롭게 추억하고 있었다. SNS로 한 순간에 망친 인생 속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랑인 마시로는 SNS에서 연결조차 되지 않았었다는 점을 감상적으로 여기면서. 이 부분이 소설의 정수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야기는 나나미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있고 다른 캐릭터의 성향에 대해서는 설명을 자제하고 있다. 그런 것 치고는 인물의 캐릭터성은 그런대로 두드러진다. 특히나 아무로가 마시로의 장례를 위해 마시로 본가를 찾아갔을 때 보여주는 오열이나 비상식적인 노출 행위를 보고있자니, 일본 소설에서 흔히 보여지는 '이탈을 통한 슬픔 해소'를 또 한 번 보게 된 느낌이다. 그렇지. 마타요시 나오키의 『불꽃HIBANA』가 굉장히 비슷한 형태의 결말을 보여준다. 또 여자가 무너져가는 일상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쿠다 미쓰요의 『종이달』이 연상되기도 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또는 상을 타는 소설을 보면 그 시대, 그 나라에 깔린 정서가 어느 정도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계속해서 이런 정서가 유행하려는 걸까나. 개인적으론 그다지 취향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