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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뷰] 잔화요란 (오카베 에츠作) - 어우러져 미친 듯 피어올라라 본문
오카베 에츠의 소설 『잔화요란』은 인간 관계 뒤에 숨어 있는 부도덕한 비밀을 둘러싸고 여성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여섯 명의 여성이 서로 얽혀 있는 구도를 취한다. 가장 중심이 되는 주인공은 리카이다. 리카는 회사 상무와 내연 관계에 있다. 리카가 다니는 서예 교실에서 만난 친구 중 마키는 에로스 연애를 추구하는 커리어 우먼이고, 다른 한 명 이즈미는 무너져가는 부부관계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미츠코는 리카의 내연남인 카시와기의 부인이며 남편의 내연 사실을 알고서 남편의 후배인 케이치를 리카에게 중매로 소개시킨다. 미우는 미츠코와 카시와기의 딸로, 엄마가 아빠의 내연 사실을 알면서도 아빠에게 맞서지 않고 비겁하게 중매를 선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겉돌기 시작한다. 류코는 리카가 다니는 서옉실의 선생님으로, TV 출연을 할 정도의 실력가이다. 류코는 서예 지도를 통해 여자들의 심리적 동요를 잠재우고 깨달음을 주는 보조적 역할을 한다. 오카베는 표면적 모습 뒤에 숨겨진 시기 질투, 욕망이 근간이 되어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옴니버스이지만 이야기는 매우 복합적으로 착착 진행되어 후끈한 열기가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이렇게 상징적이고 의미가 깊은 클라이맥스. 얼마만인지.
소설을 읽다 보면 리카의 결혼을 둘러싸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것을 알게 된다. 카시와기와 미츠코는 완벽한 쇼윈도 부부이고,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미우의 속은 소리없이 타들어간다. 이즈미 부부는 무시가 반복되는 거의 붕괴 직전의 관계를 보여주고, 마키는 결혼해서 남성에게 의지하는 여성은 시시하고 한심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리카는 카시와기에게 복수하기 위한 심정으로 결혼을 결정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인식 자체가 흐릿하다. 결혼의 의미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논하는 게 중심은 아니지만 그런 주제를 둘러싸고 여자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불안한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 위태로운 어른들의 모습에 경종을 치듯 미츠코가 숨겨둔 흥신소 조사보고서를 화로 속에서 내던진 미우의 행동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감탄스러운 점은 분량에 비해 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컴팩트하게 응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리카, 마키, 이즈미, 미츠코, 미우, 류코. 여섯 명의 여성들이 서로 상당히 높은 개연성으로 얽혀 있다. 마키는 리카의 약혼남인 케이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미우는 주변의 모든 어른들에게 대항심을 품고, '리카'의 이름으로 배우 활동을 하기도 한다. 카시와기 부부는 결혼을 한 리카 부부를 집에 초대해 천역덕스럽게 대접을 한다. 이런 얽힌 인간관계는 억지스럽지도 않고, 난해하지도 않다. 또한 모든 인물의 성향이 각기 다채롭고 풍부하다. 게다가 열일곱의 미우, 이십 대인 리카, 삼사십 대를 넘어선 중년의 마키, 이즈미, 류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감정은 불안, 격정, 체념, 성숙 그 모든 면을 보여준다. 어느 인물의 이야기를 읽든 가슴 속이 아련해지거나 미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립반윙클의 신부』를 읽고 너무 단조로운 구조와 엔딩에 대해 아쉬움이 든다고 리뷰한 적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잔화요란』은 옴니버스 소설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완성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여자가 느끼는 감정의 라인을 얼마나 '공감가는 문장'으로 잘 정리하는가. 그것이 여성 소설가가 가진 무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종이달』, 『야행관람차』, 『잔화요란』 등 최근에 읽은 작품들은 모두 여성 심리를 은밀하면서도 치밀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종이달』은 어떤 튕겨나감이 없이 매끄럽게 감정 라인을 고조시키는 게 인상적이었고. 『야행관람차』와 『잔화요란』은 연령대에 맞는 인물 성향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인상적이다. 좋은 소설은 읽는 동안 계속 밑줄을 치고 싶게 만든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잔화요란』에서 태풍을 겪는 여주인공들은 클라이맥스를 거쳐 스스로가 납득하는 방식으로 매듭을 짓는 모습을 보고 독자도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격려가 될 것만 같다. 여운이 남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기대치 않게 감정 자극이 많이 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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