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소설/리뷰] 저지먼트 (고바야시 유카) - 당한대로 갚아주는 법이 왔다 본문
「20XX년. 흉악한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일본에서 치안유지와 공평성을 중시한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복수법'이다. 복수법은 범죄자에게 당한 피해 내용을 고스란히 합법적인 형벌로 집행하는 법률이다.」
작가는 이런 극적인 선택을 한 가상의 일본 사회를 세팅하고, 복수를 집행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복수감찰관 '도리타니 아야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도리타니는 3년 간 복수집행자들을 가까이서 감찰하는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기엔 자신이 너무 정이 많아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낀다. 심지어 그는 벼랑에 선 집행자들의 마음에 위안과 용기를 주기까지 한다. 집행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지고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도리타니. 3년의 업무 끝에 결국 그도 어떤 큰 결심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는 5개의 복수 집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렌: 십대 아들을 죽인 열아홉 소년에게 복수를 가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보더: 할머니를 살해한 손녀, 즉 자신의 딸에게 복수를 집행하는 어머니의 속 사정
-앵커: 무차별 대량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동시에 복수를 허가 받은 세 복수집행자의 갈등
-페이크: 손자를 지키려다 그 친구를 죽인 영능력자와 피해자 어머니의 경쟁
-저지먼트: 여동생을 아사해 죽게 만든 학대 부모에게 복수하는 열 살 오빠의 선택
「누군가의 악의가 뭔가를 망가뜨리고, 망가진 사람은 그 분노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린다. 어쩌면 이 세상에 절대적인 타인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복수법을 선택한 순간, 집행자가 되는 인간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긴다. 범인을 향한 증오뿐이었던 감정에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강렬한 공포심이 덧붙는 것이다.」
「집행자 중에는 집행을 끝낸 후, 수형자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살벌하고 건조한 공간인 '복수집행실'에서 가해자, 복수집행자가 보여주는 심리 상태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복수집행자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스스로에게서 찾는 심리상태를 보인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나서의 후회가 복수하고 싶다는 분노와 겹치면서 집행자는 점차 형 집행을 주저하게 된다. 또 어떤 가해자는 실제로는 가해자가 아닌데도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정도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가해자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형 집행자의 결단에 박차를 가하기도 한다. 소설추리 신인장 작품이라고 하지만, 미스터리 요소 같은 건 거의 없고. 범죄를 주로 다루고 있는 소설 치곤 보기 드물게 상당한 휴머니즘이 느껴져서 인상적이다.
「열 살짜리 소년이 복수집행자로 선택된 결과를 세간에 큰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수형자 중 한 사람은 소년의 친엄마다. 인권 단체는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악법이라며 격노했다.」
복수법. 피해자의 유족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자 만들어진 이 법은 그 목적과는 달리 유족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상처를 안겨준다. 살인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는 유족들의 모습,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모습 등은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앵커'의 등장인물이 "어린아이들은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한 것에서 결국 진정한 강함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가 아닌가 하는 점을 새삼 인지하게 한다. 남의 일일 때 우리는 이성적으로만 복수법을 판단하려 할 테지만. 우리들의 일이 되면 어떻게 될까. 종교, 신념, 피해자와의 관계. 이런 것들이 '도덕성'을 넘어서서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다.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상상해보니, 결국 하루하루 충실히 아낌없이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메세지를 떠올리게 되고 말았다. 사실상 개개인은 용서도 복수도 할 필요가 없는 평온한 날만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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