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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뷰] 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 이웃을 소재로 한 범죄소설 본문
강풀이 그린 이웃을 소재로 한 스릴러 만화가 히트치면서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현대 사회의 공포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마에카와 유타카의 「크리피」도 비슷하게 이웃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 「검은집」을 통해 유명해진 사이코패스도 소재로 삼고 있다. 「크리피」는 온라인서점에서 호러소설로 분류되고 있는 걸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라는 책 속 대사에서는 호러스러운 요소를 직접적으로 느끼기가 어려웠지만, 책을 읽으면서 진짜로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범죄소설인 이 책이 크게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편하게 읽혀졌던 건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져 있는 이야기 구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범인이 누군지 숨겨놓고 여러 트릭과 힌트를 제공하는 본격 추리소설을 읽다가 「크리피」를 읽으면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경험한다. 주인공 다카쿠라는 46세의 범죄심리학 교수이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고교 시절 동급생 '노가미'라는 형사는 수년 전 일가족 실종 사건에 대한 다카쿠라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다. 한편 다카쿠라의 옆집에 사는 남자는 니시노라는 남자인데 다카쿠라는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목격하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러곤 노가미가 말한 사건과 옆집 남자 니시노 사이에 접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으로 니시노의 딸인 미오가 다카쿠라의 아내에게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라고 하더니 한 밤 중 다카쿠라 집에 피신을 온 사건으로 인해 니시노의 범행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다카쿠라의 직업이 범죄심리학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연출이나 과장된 캐릭터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이전에 읽은 작품인 「드래곤플라이」나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영향 때문인가. 주인공 남자가 드러내는 '탐정의 면모'가 너무 과장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다카쿠라는 그렇지 않았다. 사건을 대하는 자세만이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이나 인간을 대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성이 나타났다. 무모하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여 인간적인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점이 더욱 더 현실적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사건 후 10년이 지나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사건의 모순을 깨닫고 사건의 진상을 유추해나가는 과정은 부드러우면서도 암시하는 듯한 문체를 통해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자기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다카쿠라가 던지는 의문점들이 차차 맞추어지기 때문에 다카쿠라의 시선을 따라가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제자 여대생에게 남모를 애정을 품는 것도 사회파 범죄소설의 소소한 재미인가 했더니 사건 한 맥락과 연결되기 위한 복선이었다.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이 꼼꼼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설이었다고나 할까.
소설의 초반부는 니시노라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냉혹하고 잔인한 면모를 엽기적인 범죄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어서는 아내를 해치고 미오를 납치한 채 사라진 니시노가 잡히길 기대하다가, 일련의 사건들이 연결됨으로 인해 다카쿠라가 니시노의 행방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점차 수면으로 떠올라 밝혀지게 될 때에는 다카쿠라의 인간성과 함께 사건 피해자들의 복잡한 심정이 리얼하게 묘사된다. 사건은 비극적이었고 상처가 남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에 대한 군상을 보여주고 있는 인상깊은 소설이었다. 다카쿠라의 대사를 이용하자면 "슬프고도 애절한 감정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라고 할 수 있는 엔딩이었다.
참고로. 영화 「크리피」의 줄거리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데. 소설하고 배경은 비슷하지만 스토리는 상당히 각색된 듯 하다. 하나의 스토리 라인으로 담아내기엔 소설 속의 컨텐츠가 너무 많다. 아마 영화를 보면 익살스러울 정도인 연출력 때문에 실망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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