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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tante Zen

[도서/리뷰] 상실한다는 것 (Steve K. Lee) - 상실은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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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상실한다는 것 (Steve K. Lee) - 상실은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Zen.dlt 2017. 11. 18. 02:38

 

소설은 주인공 시점에서 쓴 일기 형식의 글로 전개된다. 남자는 미국 월스트릿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에 돌아와 논문을 쓸 정도로 스펙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가슴 속에 세상에 대한 증오와 허무함을 담고 있는 그. 논문을 쓰는 것도 언젠가 거만한 모두를 자기 아래 두기 위함이다. 인간 관계에 대한 갈증이란 없는 폐쇄적인 인간이다. 그런 주인공이 지율이란 여성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세상은 바뀐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그는 지율과의 미래를 위해 미국행을 관두고 한국에서 직업을 갖는 것 까지 열정적으로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지율이 그에게 이별을 선고하고, 이 세상이 모두 무의미하고 증오스러운 것이 된다.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주인공이 삶을 살아온 방식이 드러난다. 

“그래, 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것 때문에 망가지는 거야.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한 가지 때문에, 네가 가졌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버리거나 포기하는 게 쉽지. 너는 항상 그래왔어. 그게 내가 너에게 해주는 충고야.”

예언이라도 한 듯 지율과 헤어진 시점부터 주인공이 망가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지율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전심을 다해 미래를 그렸으나 실연을 당한 뒤 그는 '이제까지의 모든 삶'까지 부정한다. 그는 자기파괴적이 되어서 자기 앞에 놓여있던 두 개 갈래의 길을 모두 부정하고 낯선 땅에 가 공장 알바를 하며 자기를 혹사한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지율을 추억하고, 아픔을 후벼파며, 그 아픔을 오히려 즐기듯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지쳐버린 그는, 모든 걸 정리하고 이젠 미국으로 건너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지율을 잃은 아픔은 조금 무뎌지는 것 같았지만 역시 불쑥 불쑥 그 아픔이 튀어나와 그를 괴롭힌다. 

자. 이제 주인공은 "그 잃어버린 한가지" 때문에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가지고 왔던 그것 조차 포기하기로 할 것이다. 고작 사랑을 하나 잃은 것 갖고 무모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할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주인공 독백을 통해 그를 그의 아버지가 말했던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 에서 "사랑을 간직하고 추억한 남자"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에, 이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려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러나 그는 정말 승화 되었는가. 이 지고지순한 성격의 남자가 그런 특정한 결말에 도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한번도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 지율에게 무한정 모든 걸 쏟아버린 게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가 아버지의 말대로 심신이 강인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지율이 그렇게나 아쉬움이 들게 할 정도로 완벽한 여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서 던지는 표제 "영원성과, 그 부재에 관한 고찰. 그리고 변해가는 사람들" 이라는 것은 주인공 개인에 한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한 남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주는 '부재에 관한 고찰'은 결국 영원할 것 같았던 것(사랑)이 상실됨으로 인해 자기파괴적 인간이 그 파괴의 끝에도 도달할 수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과연 주인공이 변했는가. 변하는 것은 그의 '감정'뿐이다. 그라는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자기파괴적 성향을 간직한 그의 캐릭터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한정적인 고찰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표제는 이 책에 부여되기엔 좀 과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주인공은 본문에서 이별로 인해 겪는 감정이 여타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었던 것과 같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별하고 꿈이 좌절된 사람이 보이는 감정의 변화를 그 주인공에게만 맞춰서 고스란히 잘 써내려 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율이 대체 왜 주인공에게 이별을 고했는지 알 수도 없다. 주인공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실은 철저하게 막혀 있다. 개인 고찰에 집중 조명하고 있는 구조 때문에 감정 이입의 가능성이 증폭된다.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심리 변화 과정과 자신의 것을 비교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나아갈 길을 생각해볼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 덕분에 나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커져가고 있을 뿐이다.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것 때문에 망가지는 거야.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한 가지 때문에, 네가 가졌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버리거나 포기하는 게 쉽지. 너는 항상 그래왔어. 그게 내가 너에게 해주는 충고야.”
  
  “슬픔은 나누라는 말이 있다. 단지 자신만의 특정적인 기분을 위하여, 남에게 짐을 주는 행위, 그리고 받는 행위. 이런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앞으로 내 감정에 관하여 솔직하게 표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다.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 되기를 점점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이런 감정들이 어색하지만 좋았다. 너무 행복하고, 이 세상이, 내 삶이 너무 좋다.”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는 그 사람과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사랑의 기술>에서 보면, 연애 초반의 강한 애정은, 그동안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독했는가를 나타낸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연애다. 나는 상대방과 깊은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녀와 관련된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현실적인 생각과 계획도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그것조차도 우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미국에서 생활을 시도하는 생각도 했고, 내가 이곳에서 직업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러한 느낌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반대로 그녀의 좋은 점을 찾기 어려웠다. 온전히 상대방 자체를 좋아했다.”
  
  “만약, 아주 만약 그녀가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고 한다면, 더 이상 내 삶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혹은 내가 돌아갈 곳이 남아있기는 할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 한구석이 석연치는 않다. 다만, 두렵지는 않다.”
  
  “각자의 삶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서로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런 부분을 그녀와 늘 이야기 했다. 요즘 대화를 할 때면 그녀는 내 눈을 피한다. 서운하지만 애써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지려 함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기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신 같은 존재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대로 끝임을 느낀다. 더 이상 이 삶에 미련이 없다.”
  
  “다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그녀와 함께 했을 때 세상 모든 것에 자신 있었던 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다. 나는 세상과 소통하길 거부할 것이다.”
  
  “다시 우리가 했었던 약속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들 전부 하나씩 꺼내어 상기해보면,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지속적으로 이 고통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생각하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녀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을 다시 되돌려 상상을 하면, 필름에 물이 묻어, 흐리게 나오는 사진처럼 상대의 모습이 생각났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기가 했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가 다시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메시지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던 속마음도 있었다. 그녀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내가 저질렀던 잘못된 말투나 행동들에 관하여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지속하다가도, 대부분은 더 이상 소용없는 일이라며, 혼자서 하던 상념을 끝내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들을 지속하기로 매번 다짐한다.”
  
  “이제는 제법 멀어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안심하고 지낼 때 마다, 익숙한 그 통증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외로운 감정과 이별의 고통은 내 신체 일부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타의적인 것들로 내 삶을 바꾸려 해도, 그녀 없이는, 더 이상 나 자신만의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슬퍼지지 않을 때, 그것은 내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잠시 통증이 사라졌을 뿐, 그것은 좋아지는 상황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하여금 그 통증을 잠시 잊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욱 나를 안 좋은 상태로 만들거나, 다른 것들로 하여금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들과 함께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며, 거짓을 이야기하고, 그 거짓에 위안하며 살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한 때 내 거짓 삶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아니 잊히는 것이었다. 거짓이기 때문에 간지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어떠한 형태로라도, 이런 방식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상대방을 그리워 하는 대신, 집중할 것들이 필요했었다. 잠시나마 상대방을 잊고 살아가게 도와줄 어떤 계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당시 많은 약속을 했다.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서로가 어떤 상황에서든 용기 내어 행동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다짐한, 내 모든 언어에 의미를 부여했고 심지어는 그러한 삶의 방식에 충분히 자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만이 내 삶을 윤택하고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였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전의 무의미한 삶보다는, 그녀를 알게 되었던 이 현실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상대방과 멀어진 후, 이제는 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직면하고 있다. 그렇게 이제는 1년에 가까운 모든 계절을 혼자 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상대방을 그리워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대상은 나만의 몽상으로 조금씩 입장이 변할 때도 있었던 것 같았다. 지독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겪는 심리적 변화도, 내가 다른 문학 작품들을 통하여 보았을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많이 두렵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에서 두려움이 찾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내 삶을 바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내 삶에 돌아온다면 어떨까. 이제라도 마음을 바로잡아볼 수 있을까. 아니 아마도 이제는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모든 절망들을 바라본 상태로 이 삶을 지속하게 된다.”
  
  “이제는 정말 두렵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더욱 깊어지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과 절망. 그리고 그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를 점점 더 괴롭게 해. 하지만 아프지 않은 척 행동해야 해. 혹시라도 나로 인해 그녀가 아파하면 안 되거든.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프지 않은 척 연극 하는 거야.”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에, 이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려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잠시 이 세상에 다녀갔다고. 넌 내 삶에 있어 최고의 친구였어. 최고의 존재로 남아주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