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소설/리뷰] 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 공포와 혐오 본문
아마 류츠신의 《삼체》를 검색하면서 《블러드 차일드》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흑인 여성작가의 굴지의 작품으로 《블러드 차일드》가 소개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진 못한채로 시간이 흘러갔었는데. 지난 주, 광화문 교보문고의 매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역시 무시하지 못할 소설이었구나 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옥타비아가 흑인 여성 작가로서 갖는 아이덴티티나 그녀의 성공이 문학 세계에서 갖는 의미 등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녀가 《블러드 차일드》 서문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내 감상을 이야기하는 걸로 정리하려고 한다.
내 친구가 SF 곤충 호러 영화 중 미믹(Mimic)을 강력 추천할 때 나는 벌레가 나오는 호러보다 더 호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옥타비아가 자신은 딱히 SF작가인 것은 아니라고 하니, 〈블러드 차일드〉도 SF가 아니라고 해보자. 그리고 그녀가 주장하는 종족을 넘어선 사랑이야기라는 생각도 제쳐 놓고 보자면, 〈블러드 차일드〉는 내게는 호러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시커멓고 거대한 벌레가 문명과 먹이사슬 최고 단계를 가로채고는 새로운 생존(생산) 라인을 개척해 인간을 이용하는 세상은 디스토피아나 다름없다. 호러 게임 스콘(Scorn)의 영상 속의 외계 괴생명체를 보면서 느끼는 혐오감과 비슷한 감정이 연상되었다. 〈블러드 차일드〉에는 다리가 여럿 달리고 키가 3m는 되는 곤충이 인간 가족을 사육(알을 먹인다)하는 틀릭이라는 종족의 트가토이라는 곤충이 나온다. 간(Gan)은 트가토이의 공간에서 함께 사는 인간이며, 형, 누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간은 태어날 때부터 트가토이에게 바쳐지도록 선택된 인간이다. 간은 언젠가 자기가 주어진 사명을 다 해야 할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이들의 집에 느닷없이 찾아온 한 남자는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이다. 트가토이가 그 남자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처음으로 깨닫고 혐오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남자는 출산 중이었다. 자신의 파트너 틀릭이 몸 속에 깐 알의 유충들이 태어나려 하는 순간이었다. 트가토이의 처치가 늦었다면 유충들이 남자의 몸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간의 누나가 트가토이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는 점을 보면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이 진행된지도 꽤 되었을 걸로 생각하게 된다. 반면 간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교육을 받아왔음에도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분명 간이 소년이라는 점, 간이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의 갈등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옥타비아의 말 처럼 〈블러드 차일드〉는 성장 소설이다. 형체 없는 여러 의문과 철학적 생각들을 생각나게 하는 새로운 환경을 설정한 것도 대단한데, 그 안에서 성장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 이야기는 〈저녁과 아침의 밤〉이다. 이 이야기에선 자기 신체를 훼손하는 질병인 DGD 유전병을 갖는 사람들이 나온다. DGD 보유자들은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지만 보다 천재적인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천재적인 능력이 발현되는 증후군)에서 자폐 증상 대신 자기는 물론 남의 몸까지 찢는 증상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질환자들이 반사회적 증상을 갖고 있어서 사회에서 특별한 감시를 받고 격리되어야 하는 세상이 있다면 〈저녁과 아침의 밤〉과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 이 이야기에서 DGD 보유자들은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고 소명을 다하며, 생존권과 부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 방식이 DGD 환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는 과정이 된다고 해도, 그것만 빼놓고 보자면 마치 축복인 것 처럼. 〈블러드 차일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DGD 보유자가 자신의 사명(외부로 부터 강요된)을 깨닫고 선택의 기로에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선택이 결말 뒤로 남겨지게 되는 것만 빼고는. 주인공 린이 결국 자기 몸에서 나오는 신경 안정 페로몬을 이용해 DGD 환자들을 안정시키고 그들이 천재적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물품들을 창조해내도록 컨트롤하게 될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나한테는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고 그걸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들로 다가온다. 여기에 어떤 도덕적인 질문들을 던져야 할지, 어떤 게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상상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선 〈특사〉가 좀 더 발전된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느껴진다. '새로운 변화'에 마주한 인간이 던지게 되는 저항감이 〈특사〉에서 나타난다. 〈특사〉에는 식물의 형태를 지닌 외계인의 침공에 지고 만 인류가 나온다. 처음 식물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실험을 당한 인간들 중 일부가 이제 식물의 언어를 번역하고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통역사들로 활동한다. 식물 외계인은 지하 광물을 캐내어 인간의 경제 세계에 침투했고, 이제 인간들의 '고용주'의 위치에 올라섰다. 먹고 살기 위해 식물에게 고용을 요구해야 하는 후보자 6명이 주인공인 통역사 노아에게 항의한다. 당신은 그 식물들이 당신에게 한 짓이 있는데도 그들을 위해서 노예 같이 일을 하는 것이냐고. 지극히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한 저항감인데, 노아가 답한다. 잊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통역이고, 자신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후보자들은 이 별을 침략한 자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억울하다고 항의하지만, 이미 노아는 인류가 패배했음을 알고 있다. 이 여자도 마찬가지로 '적응'해야만 했던 거다. 〈특사〉가 좀 더 발전된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건 후보자들이 어떤 더 높은 차원의 도덕절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후보자들의 질문은 정중지와 식의 이기적인 질문들이다. 노아를 데려다가 심문한 FBI 들의 모습은 오히려 더 잔인하고 치명적이다. 《삼체》에서 나왔던 '우주 사회학'의 관점을 적용해서 보자면, 노아와 같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난 사람이 오히려 미래 우주 문명 속에서 살아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까운 친척〉은 오랫동안 헤어진 채 살았던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친척들과 다시 만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는 외삼촌과 대화하며 어머니와의 일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외삼촌에게 실은 당신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안다고 고백한다. 이내 외삼촌은 여자에게 어머니가 왜 딸을 멀리했어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끝난다. 어머니는 딸을 보면 자신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딸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담담히 대화하는 두 사람의 말투 때문에 왠지 침착한 기분이 되는 이야기였다.
〈말과 소리〉는 인간들끼리 구분을 짓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야기다. 권태와 자포자기한 상태가 만연한 사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돌연 사람들은 언어, 말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어떤 기능이 상실된다면 인간은 야생동물 사회 속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것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이야기였다. 공공 버스 안에서 유혈 낭자한 폭력이 발생하고, 버스 뒷좌석에서 남녀는 시선을 아랑곳 않고 성교를 한다. 이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보여지는 것과 비슷하다. 말 못하는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고등 인간들에게 공포를 느꼈고, 그들을 죽이고 있다. 주인공 여자는 사실 교사였고, 아직도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 여자는 길 거리 폭력 현장에서 아버지가 살해된 두 소년소녀 고아를 발견한다. 아이들이 말을 할 줄 안다는 걸 알게 된 여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을 거두기로 한다. "나에게는 말을 해도 돼" 라고 하면서. 옥타비아는 실제로 어느 날 버스를 탔을 때 싸움 장면을 목격 했고, 그 때 본 것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고 했다. 일상 체험을 토대로 이런 문제적(?) 작품을 써낸 것을 보고 그녀의 필력을 알아차리게 된다.
〈넘어감〉은 퇴폐한 생활 속에서 나쁜 남자의 유혹에 거듭 넘어가고 마는 여자의 이야기다. 술 냄새 자욱하고 답답한 이야기다. 가난한 여성들의 답답한 삶을 그려내고자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사의 책〉은 옥타비아가 생각하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신은 작가 마사를 불러내 신의 능력을 부여받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임무였다. 마사와 신의 대화 속에서 천국이란 게 뭔가 하는 자문 자답이 이어진다. 결국 마사는 인간이 자멸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성을 잠재워 줄 꿈을 꾸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신은 그렇게 하라고 한다. 사실 마사와 신의 대화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죄악 같은 걸 떠나서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마사는 신에게 자신이 여기 왔었다는 걸 잊게 해달라고 한다. 자신에게 막중한 임무가 있었단 것, 어쩌면 인간들에게 큰 해를 입히게 될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신은 마사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 의식을 되찾으면 기억이 없어지게 한다. 마사가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그토록 잊고 싶어했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이 대목이 제일 무섭다. 우리가 깨어나면서 잊어버린 꿈 내용 중에 어떤 것들이 있는 건지도 무섭고. 어쩌면 태어나기 전, 의식이 있기 전, 마지막 기억이 있기 전에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도 생각해보면 무섭다. 옥타비아가 <저녁과 아침의 밤>의 후기에서 남긴 질문 그대로, "대체 우리는 무엇인가? 정말로,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SF들은 미지의 환경과 시스템을 그려놓는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마주한 인간들의 허둥지둥하는 모습 속에는 성장도 있고 호러도 있고 우정이나 희망도 있고 어떨 땐 해결되지 않는 비참함도 있다. 《삼체》에선 아직도 외계 문명과 맞설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게 보여졌고.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는 생명 복제 기술을 악용하는 인간들에게서 비참함이 보인 것 같다. 《블러드 차일드》에서는 비애나 호러, 성장들이 느껴진다. 많은 SF작품들이 각각 개성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는 게 즐겁다. 어쩌면 미스터리와 호러 작품을 지나 SF로 입문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게 한다.
'Libr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리뷰] 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 이론적 호러와 체험적 호러 (0) | 2016.12.14 |
---|---|
[소설/서평]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 한 방울 음침함을 첨가하지 (0) | 2016.12.07 |
[소설/리뷰] 전국지 3 - 좌절을 거듭하는 토벌의 꿈 (0) | 2016.11.30 |
[소설/리뷰] 전국지 2 인간오십 (요시카와 에이지) (0) | 2016.11.24 |
[학습/서평] GIS Research Methods (Steinberg, 2015) (0) | 2016.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