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마츠모토 세이초의 활동 시대 때부터 일본 추리/미스테리 소설의 연혁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 새로운 공통 주제가 다시 등장했다고 느낀다.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주로 밀실이나 외부에서 차단된 공동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정통 추리소설의 붐을 일으켰고, 이후 요코야마 히데오 등을 거치면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지적' 하는 소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사회소설들에는 많은 스타일들이 있어서 스토리, 이슈, 인물내면, 해결점 등의 부분에 있어서 각 소설이 무게점을 두는 부분에 차이가 있었다. 여류작가 미나토 가나에 등의 섬세한 필치와 반전이 남성 위주의 추리 소설 무대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었다. 이러한 이전 소설들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등장시켜 '선과 악'을 분간하는 것에 큰 어려..
아직 이름을 떨치지 못한 신인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 깔끔함과 간결함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여기서 쾅 저기서 쾅' 하지만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미스터리 분위기를 풍기며 독자로 하여금 '대체 뒤에 뭐가 있는데?' 하고 생각하게 하려는 게 아닐까. 요컨대 '내가 익힌 모든 수법을 다 동원해서' 버라이어티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 같다. 이 소설 의 기법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색채를 강조한 시각적 자극, 선정적 소재,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카리스마적 인물, 거대 음모 세력,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형사, 범인, 조력자, 피해자), 사연있는 인물, 액자형 구조. 옴니버스인 듯 아닌 듯 한 구조는 얼마나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이렇게 다 뒤섞어 놓은..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 으레 '유머도 모르나', '칭찬이었는데?', '여자가 피해의식이 있다', '남자들을 다 매도하지 마라' 하는 식으로 쉬쉬하면서 넘어가다보니 여성이 공공장소/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종류의 성폭력에 의한 불쾌/자괴감은 가려져왔다. 그 결과 여성들은 사회에서 안전을 느끼지 못해-심지어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하여-집 안에 홀로 고립되어 버린다. 토마 마티외는 이러한 상황을 전파하기 위해 '악어 프로젝트'라는 그림책을 쓴다. 저자 본인이 남자이면서,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담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한 바 이러한 '현실'과 '사회상'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여성은 인간형태로 그리고 남성은 '악어'로 그렸다는 데에 있다. 여기엔 저자의 깊은 ..
제목만 읽고 흥미를 느꼈는데 책 속 내용은 중간부분부터는 제목과 관련 없는 '인생 강의'내용으로 넘어간다. 왜 많은 기억들 중에 나쁜 기억만이 잊을만 하면 사람을 덮쳐 일상을 어지럽히는지에 대한 임상적 경험, 연구 결과, 학계 정설 등이 설명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저자 개인의 경험과 일부 인문학적 고찰들이 섞여져 짧게 소개 되어 있고, 제목 자체가 던지는 질문과 관련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감상이 들었다. 궁금해져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뇌를 공부하는 의사이자 비젼 강사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발전하는 삶'에 대한 일련의 조언들이 책의 중후반부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가 '내가 스스로 평소에도 자주 읽는 격언'들이라 말하는 것에서도 느껴지듯, 저자 스스로에 대한 격려로 읽히는 부분이 많았..
추리소설에 관심을 끄고 성장소설로 관심을 돌린지 얼마나 된걸까, 거의 1년이 된걸까. 그러던 와중 우연히 e-book 목록 뒤지다가 브루클린 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대여하게 된 이 책.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아일랜드의 한 젊은 처자가 미국에서 온 신부님과 자기 언니의 도움으로 미국에 취업 이민한 후 겪는 에피소드와 심정 변화들을 소소하고 담담한 문체로 담은 소설이다. 현재 타지 (브루클린에서 기차 2시간 거리)에서 살고 있는 입장에서 매우 주관적인 리뷰를 간만에 써 보려고 한다. 소설을 읽고 역자의 후기에서 알게된 일이지만 아이랜드는 영국의 식민 지배와 전쟁 등을 거치면서 망명, 이민 이라는 주제를 통한 정체성 찾기를 항상 소설의 소재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그런 배경이 있는 아일랜드의 ..
줄거리 소개는 생략. "나는 사랑했을 때 비로소 사랑받았다. "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사람은 한없이 다정하고 매력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이죠. 손에 넣은 후에는 표면적이고 무책임한 다정함으로 변해버려요. 자신의 다정한 행동이나 이성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소망을 진정한 사랑과 혼동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이런 저런 넋두리를 내두른다. 당연히 사랑을 하는 과정에 편안함은 생기고 무책임한 다정함이 생긴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모두 알지 못하는채로 지금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도 안 나올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 후지의 처제가 질문을 던진다. 결혼은 왜 하는 걸까요? 후지가 대답한다. "딱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