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tante Zen
《크리피》로 국내에 소개된 마에카와 유타카 작가의 이전 작품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을 읽었다. 1985년 한 남자와 여섯 여자가 가고시마 시의 한 동굴 안에서 집단자살을 한 사건의 내막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한 기자가 취재하여 논픽션으로 쓴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숙부가 사건의 관계자였던 것 때문에 흥미가 생겨 사건을 조사하게 됐다는 경위를 밝히고. 1-5장에 걸쳐 자살의 중심에 있는 실질적 주인공 '기우라 겐조'와 그가 벌인 일들이 소개된다. 에필로그에서는 사건 취재 종료 후 마지막 관계자를 만나서 더욱 생생한 증언을 듣는다. 전직 대학 교수였던 기우라는 조직폭력단 조장의 딸과 이력적인 결혼을 하지만 그녀를 목졸라 죽인 후 교도소에 수감된다. 출소 후 경제학 지식과..
남편 아드리앵은 아내 클로에와 자식을 남겨놓고 내연녀와 비행기를 타고 도피한다. 마음이 병든 클로에의 곁에서 시아버지 피에르가 그녀를 달래지만 클로에는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피에르의 말들을 들을 정도로 추스리지 못한 상태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은 물론 삶의 불합리함과 허무함에 대한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을 당연시 했던 결과가 이 불행의 이유라 믿고, 감정에 솔직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피에르가 자신에게도 인생의 진짜 사랑, ‘내연녀’가 있었음을 고백하기 시작하자 드디어 클로에가 관심을 보인다. 피에르는 아내 쉬잔과 열렬히 사랑을 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떠밀리듯 결혼한 것이었다. 나이 마흔다섯이 돼 만난 서른살의 마틸드라는 여자는 그에게 살아있는 감각을 처음으로..
소설은 주인공 시점에서 쓴 일기 형식의 글로 전개된다. 남자는 미국 월스트릿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에 돌아와 논문을 쓸 정도로 스펙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가슴 속에 세상에 대한 증오와 허무함을 담고 있는 그. 논문을 쓰는 것도 언젠가 거만한 모두를 자기 아래 두기 위함이다. 인간 관계에 대한 갈증이란 없는 폐쇄적인 인간이다. 그런 주인공이 지율이란 여성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세상은 바뀐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그는 지율과의 미래를 위해 미국행을 관두고 한국에서 직업을 갖는 것 까지 열정적으로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지율이 그에게 이별을 선고하고, 이 세상이 모두 무의미하고 증오스러운 것이 된다.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주인공이 삶을 살아온 방식이 드러..
. 로런 그로프가 2015년에 쓴 장편소설(608p)이다. 이 이야기는 두 남녀의 결혼생활을 그들의 농밀한 관계와, 주변사람들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조합하여 연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햇살처럼 아름답고 눈부시지만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수수께끼와 음울한 분노는 두 커플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간극을 만들고, 이윽고는 균열을 만들어낸다. 소설의 전반부 '운명'은 남편 로토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후반부 '분노'는 아내 마틸드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부유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로토의 방황하는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고독감 탓에 문란하면서도 순수하여 위태로운 청년기를 보낸 로토. 그렇게 자란 로토는 부서질 것 처럼 순수한 영혼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악(Evil)으로 ..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사건〉은 지난 1978년 저자가 겪은 드라마틱한 법의학 에세이를 연재했던 내용 중 오늘날에도 의미 있을 법한 꼭지들을 추려내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법의학자이자 의사평론가인 저자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의대 법의학 교수, 뉴욕의대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자는 책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법의학 지식으로 차가운 분석에 그치는 게 아니라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현장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기사 발췌)" , 등을 즐겨 보기 시작한지 얼마가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들 프로그램 덕분에 국내의 범죄사건에 대해 관심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 전엔 해외 추리 소설 등을..
책은 첫장에서 지위, 불안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면서 앞으로 책에서 어떤 부분을 논의해 갈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책 제목 『불안』은 지위(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신분)의 관점에서 사회가 제시한 일정 수준에 부응하지 못하여 존엄성을 잃을 것 같다는 심리적 상태를 제한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 한정적 개념에서의 '불안'이라는 감정이 촉발되는 원인을 심리학, 역사, 사회과학, 인문학, 경제학 등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짚어내려 하고 있다. (책 표지에서 '심리철학서'라고 하고 있는 것도,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인 듯하다.) 알랭은 인간이 성공과 지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것은, 지위가 결국 인간의 도덕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는 이데올로기가 만연해졌기 때문..